|
◆예술촌, 카페거리로 변모하는 옛 도심 국내 지자체들도 텅 빈 공장을 예술가들에게 내주거나, 재생 사업 등을 통해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서울 문래동은 공장들이 떠난 후 예술가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러자 공장 지대의 삭막한 풍경이 조금씩 바뀌었다. 공장 담벼락과 철문, 거리 곳곳에 그림과 조형물이 생긴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예술가가 모이면서 이곳은 ‘문래창작촌’이란 이름을 얻었다. 여전히 1000여개 철공소가 있는 이곳에는 100여개 작업실에서 3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활동 중이다. 예술가들이 입주한 낡은 공장 건물 옥상마다 텃밭 겸 꽃밭이 들어서고, 그 옆으로 벽화와 철제 조형물이 자리 잡았다. 덕분에 주말이면 카메라를 들고 문래동을 찾는 젊은이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 이들의 취향에 맞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생겼다. 경남 창원 마산 창동은 한때 경남에서 상권이 가장 번성한 곳이었다. ‘경남의 명동’으로 불리며 수많은 젊은이를 불러들였다. 2000년대 들어 신도시 창원으로 사람들이 몰리자 급격히 몰락했다. 도시 재생 사업을 시작한 2011년부터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이 빈 점포에 둥지를 틀었고, 거리 풍경이 바뀌었다. 마산 출신 세계적 조각가 문신 선생을 재조명하는 ‘문신예술골목’이 만들어졌다. 뒤이어 예술의 도시 마산을 증언하는 ‘마산예술흔적골목’이 조성됐다. 여기에 예술가의 창작 공간과 상가를 융합한 ‘에꼴드창동골목’이 더해졌다. 2012년 세 골목을 합해 ‘창동예술촌’ 간판을 달았다. 각종 공방과 아틀리에 유리창 너머로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 사람들은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산에 움막을 짓고, 깡통을 펴 지붕을 올렸다. 산동네에도 길이 필요했다. 1964년 10월 산동네를 연결하는 첫 산복도로가 열렸다. 산복도로를 이야기할 때 빠뜨리면 안 되는 곳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감천문화마을이다. 한동안 낙후된 시설로 주민이 빠져나갔지만, 지금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썰렁한 담장에 그림을 그리고, 골목 곳곳에 재미를 입힌 덕분이다. 광주 동구 동명동은 숲길과 오붓한 골목, 카페거리가 공존하는 동네다. 마을을 감싸고 연결되는 푸른 숲길부터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책방, 근현대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추억의 골목 등이 소담스럽게 모였다. 동명동 일대는 한때 학원가로 명성이 높았고, 학부모들이 머물던 카페가 많았다. 최근에는 문화 공간과 이색 카페가 생기며 젊은 층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동명동 카페거리는 서울의 경리단길에 빗대 ‘동리단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Copyrights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