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지인과 친구 사이…청첩장은 어디까지 보내야 하나요

“헤어진 여자친구가 보낸 청첩장… 어이가 없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그렇고.”

서울에 거주하는 강모(31)씨는 최근 9년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청첩장을 받았다. 청첩장과 함께 “결혼식에 꼭 와달라”는 전 여친의 연락도 받았다. 이별한 지 9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강씨는 애수(哀愁) 같은 감정은 들지 않았지만 결혼식 참석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전 여친이 대학교 동아리 후배였기 때문에 인연의 끈은 남아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강씨의 생각이 괘씸하다는 감정으로 바뀐 것은 A씨가 전 남자친구‘들’에게 모두 청첩장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고난 이후였다. 청첩장을 받은 전 남친 중에는 같은 동아리 부원이자 자신의 친구도 있었다.

강씨는 “처음 청첩장을 받았을 때는 상대를 위해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헤어진 남친들 모두에게 청첩장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어졌다”며 “한 때 좋아하는 감정이 있는 사람들을 5∼10만원짜리 축의금 채권으로 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결혼식 전에 예비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청첩장을 보내는 것과 예식장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적정선(線)’을 고민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예비 신랑·신부들의 마음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에 찾아와 축하를 받는 마음이지만, 어디까지 초대를 해야 빈축을 사지 않을까 고민한다. 평소 연락도 하지 않는 데면데면한 지인에게 청첩장을 보냈다가 자칫 어색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첩장을 받은 하객들 역시 고민이다. 딱히 친밀한 관계가 아니어도 막상 결혼식에 초대를 받으면 외면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초대받은 모든 결혼식을 챙기려니 시간과 금전이 낭비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 상당수는 훗날 자신의 결혼식에 품앗이 형태로 상대를 초대할 것을 염두하기 때문에 다소 계산적이다.

◆정말 친한 사람만

비교적 안정적인 선택지다.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 받은 친한 사람만 초대할 경우 예식장을 찾은 하객의 수는 아무래도 적겠지만 빈축을 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남모(28)씨는 오는 11월에 결혼하면서 최근에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친밀한 관계를 이어온 친구와 선후배에게 청첩장을 돌렸다. 과거에 친하게 지냈어도 최근 연락이 끊긴 사람들에게는 청첩장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남씨는 “친했어도 연락이 끊어진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보내는 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며 “갑자기 다시 연락해 청첩장을 줘도 ‘돈 달라는 뜻이구나’라고 여길 것 같다”고 말했다.

28일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20∼30대 미혼남녀 438명(남 230명, 여 208명)을 대상으로 결혼식 참석과 초대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첩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걱정은 친밀도(37%), 적정선(26%), 상대방이 느낄 부담감(18%), 오랜만에 연락하는 상황(13%) 등이 뒤따랐다.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조금 뻔뻔하다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초대하는 경우도 있다.

28일 결혼식을 올리는 A(30·여)씨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연락처를 저장한 지인 모두에게 청첩장을 보냈다. 결혼식에 초대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전 남자친구, 7년전에 인사만 나눴던 학교 선배, 동아리 부원들, 직장 동료를 포함해 거래처 사람들도 포함돼 있었다.
청첩장을 작성해 보내는 것은 걱정되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돼면서 몇년 전부터 ‘모바일 청첩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손가락 조작 몇 번이면 카카오톡 등 메신져를 통해 수 백명의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전송할 수 있었다.

A씨는 “초대한 사람들 모두 결혼식에 참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최대한 많이 보내야 예상보다 더 많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하면서 만난 이들은 어쩌지

직장을 다니면서 알게된 사람들이 보낸 청첩장은 더욱 난감하다. 같은 직장 동료의 결혼식은 큰 고민이 되지 않는다.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거래처 직원 같은 ‘비즈니스 관계’가 보낸 청첩장이다.

직장인 김모(38)씨는 외부협력 담당 업무를 맡는 특성상 거래처 사람들의 결혼식도 챙긴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어려울 때는 꼭 축의금 봉투를 보낸다.
솔직히 김씨는 비즈니스 관계자의 결혼식을 챙기는 것이 싫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거래처가 ‘갑’인 경우가 많아 눈물을 머금고 축의금 봉투라도 보내는 것이다. 축의금을 보내지 않았다고 행여나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내 결혼식에 찾아온 사람들보다 내가 결혼식을 챙겨준 사람의 수만 두 배가 넘는다”며 “속은 쓰리지만 결혼식을 챙기다보면 나중에 생색내기도 좋고 상대와 더 친해질 수도 있다”고 씁슬하게 말했다.
실제로 위의 같은 설문조사 결과 상대의 결혼식 참석 여부는 대부분 친밀도(78%)에 따라 결정됐다. 다음으로 ‘내 경조사를 챙긴 사람(10%)’, ‘비즈니스 관계(8%)’ 순이었다.

또 청첩장을 받고도 부담감을 느낀다고 답한 사람들은 ‘애매모호한 관계(35%)’, ‘참석여부 불확실(29%)’, ‘경제적 부담(19%)’, ‘거리적 부담(10%)’, ‘시간적 부담(7%)’ 순으로 이유를 말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