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나마스테!] “언어 잘 몰라도 한국은 내게 고향… 경계지역의 삶 작가로선 축복”

中 조선족 스타작가 진런순 “춘향은 절대 열녀가 아닙니다. 미모에다 남자가 자고 싶으면 자주고, 남자가 떠나면 정절을 지키고, 그런 여성은 사실 없습니다. 조선 반도 남성이 만들어낸 상상 속 여성일 뿐입니다. 이몽룡 같은 인물이 와서 구원해줄 필요도 없고, 구원받고 싶으면 자기 스스로 구원하면 됩니다.”

중국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작가로 각광받고 있는 조선족 작가 진런순(金仁順·47)이 2012년 ‘준마문학상’을 수상한 장편 ‘춘향’에서 춘향은 이몽룡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제11차 한중작가대회가 열린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만난 조선족 중국 스타작가 진런순. 한국어를 모르는 그녀는 “부모님들의 조선어는 어떤 위안과 어루만짐처럼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 젖어 있었다”면서 “나의 글쓰기는 일종의 추억이자 탄식이었다”고 국내에 번역된 소설집 ‘녹차’ 서문에 적었다.
왜 그런 결말을 지었는지 묻자 진런순은 명쾌하고 단호하게 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춘향전은 하층 계급 여자가 미모를 통해 구원받는 이야기였는데, 춘향이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이나 심리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녀가 지은 소설에서 춘향은 어머니 ‘향부인’(월매)을 비롯한 약한 여성들끼리 서로 돕고 연계하면서 강한 존재가 되고, 그 유토피아에서 스스로 구원받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 소설 속 춘향은 전통적인 이야기 속의 인물과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지난 17일 제11차 한중작가회의가 열리던 중국 지린성 창춘 쑹위안 호텔에서 진런순을 독대했을 때 춘향 이야기부터 물었다.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그녀의 장편인데 춘향이 이몽룡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소개 글을 접하고 이 이야기에서부터 진런순 문학의 실마리를 풀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두 종류의 소설을 쓰는데, 하나는 객관적인 중국 현대인의 삶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뿌리인 조선족 관련 이야기라고 했다. 조선족 이야기를 쓸 때면 자신도 모르게 페미니스트가 된다고 했다. 그녀는 한반도가 여성에 대한 비하적 전통이 강했고 지금도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춘향 이야기로 진런순에 대한 섣부른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귀국해서 국내에 유일하게 2014년 번역된 그녀의 소설집 ‘녹차’(글누림)를 읽으면서 이런 작가를 뒤늦게 접했다는 사실이 미안할 정도였다. 

중국에서 영화로 제작돼 인기를 끌었다는 현대 남녀의 연애 심리를 다룬 표제작에서는 그냥 머리를 끄덕였지만, 첫머리로 돌아가 읽기 시작한 ‘복숭아꽃’은 가위 절창이었다. 남자를 둘러싼 모녀의 애증을 담담하게 풀어가는 절제된 문장 속 이야기가 뜨거웠다. 이어지는 ‘성안에 봄이 오니 초목이 무성하네’는 단아한 문체에 실린 관능과 사랑의 슬픔이 잔잔하고 격하게, 스미듯 아프게 읽혔다.

조선어를 모르는 그녀는 이 한국어판 소설집 서문에 “엄마와 아빠의 타향이 나의 고향이긴 하지만 당신들의 고향은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고 적었다.

진런순의 부모는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건너와 지린성에서 4남매를 낳았다. 아버지는 탄광촌 구락부(극장) 책임자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점심을 배달하며 극장에서 살다시피하면서 영화는 물론 각족 공연에 접하면서 진런순은 성장했다. 문화혁명이 막 끝나던 1970년에 태어나 각종 세계문학이 구비된 도서관에서 책을 끼고 살기도 했다.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천혜의 환경을 누린 셈이다. 정작 미대를 가려다가 우연찮게 길림예술대학 연극문학부에 들어갔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문예지에 투고해 원고료가 생활비를 상회할 정도로 문재를 발휘했는데, 대학시절부터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작가’라는 문예지에서 10여년간 편집자로 일하면서 수많은 투고작들을 줄이고 고치는 일을 했다. 이때 경험이 자신의 문체를 단정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술회한다.

한국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유수의 문예지에 고르게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야 작가로 대접을 받는데, 이 과정을 1996~1997년 수행했다. 정치적 이념에서 자유로워진 중국의 ‘치링허우’(1970년대생 출생자) 유명 문예지 작가 특집(1998년)에 진런순이 선정되면서 그녀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녹차’가 영화로 각광받은 뒤 ‘엄마의 장국집’이라는 드라마도 썼다. 그녀의 작품이 러시아 연극 무대에 올랐고, 영어로 번역된 작품도 다수다.

정작 한국에서 그녀의 작품이 홀대받는 편이다. 4남매 중 막내인 그녀만 형제 중에서 조선어를 할 줄 몰라 통역을 옆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안타까움이 컸다.

“제 신분은 조선족 작가라기보다 먼저 작가, 글 쓰는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조선족 관련 글을 쓰기는 했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고, 중국은 땅이 너무 크고 민족들이 많아서 소수민족 작가 중 유명 작가들이 많지만 누구도 소수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저 자신도 조선족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인 소수민족문학상인 ‘준마 문학상’을 받으면서부터 아, 진런순이 조선족이구나, 그래서 그렇게 썼구나, 비평가들이 인식한 거였죠. 중국에서는 조선어를 몰라 조선족 작가와 교류하지 못하고 한국에 가면 중국 작가라는 두 개의 변경 지대 신분, 괜찮아요. 작가로서는 오히려 좋습니다.”

그녀는 하나하나의 작품에 최선을 다해서 쓸 뿐, 대작에 대한 욕망은 없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결국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에도 이해와 소통이 어렵고 혈통과 혈맥은 한반도 사람인데 이렇게 한국 기자를 만나서도 통역이 필요한 한계가 있듯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라면서 “소통 자체는 불가능하지만 소통하려는 과정에서 인간 사이에 생기는 미묘한 따스함과 부드러움, 그것이 알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주제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싱글의 이미지가 강해 조심스럽게 결혼 여부를 물었더니 그녀는 조각을 하는 길림예술대 교수 남편과 아빠를 닮아 공예 솜씨가 좋다는 열세 살 딸아이와 단란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가정생활과 문학 작품은 분명하게 구별한다고, 웃으면서 못박았다.

주로 중단편에 매진한 그녀는 두 번째 장편으로 중국에 와 있는 한국 사람, 한국에 가 있는 중국 노동자와 유학생들을 다루면서 작금 중국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다. 연말쯤 한국에 들어와 체류하면서 구체적인 취재와 집필에 몰두할 예정이다.

진런순이 지금까지 써온 소설의 3분의 1 정도는 중국 고전소설의 전통을 활용한 조선 이야기였다. 이런 유의 작품은 아주 정치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썼는데 외국 독자들도 좋아해서 항상 선집에 들어가고 번역됐다고 한다. 황진이가 파계시킨 지족 선사와 나눈 정신과 육체에 관한 담론을 소설로 승화시킨 ‘승무’라는 작품은 모스크바에서 연극으로도 상연했다. 이 작품 속 황진이도 페미니스트냐고 물었더니 김인순씨, 명쾌하다.

“물론이죠. 내가 쓴 인물인데.”

창춘(중국)=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