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능력주의’ 알고보니 불평등의 주범

‘인간 능력 평등하지 않다’서 출발 / 새로운 계급 ‘재능의 귀족’ 인정 / 지배층 양산… 부과 권력 독점 / 지나친 엘리트 숭배 미국 사회 / 금융위기 부른 리먼사태 등 자초 / ‘어떻게 망가져가나’ 냉철한 통찰
미국 정치평론가 크리스토퍼 헤이즈는 “능력주의는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약속이지만, 인간이 능력과 진취성에서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하에 새로운 계급을 인정하는 신념”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믿는 것은 능력주의가 아닌 능력주의 신화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능력주의를 숭배하는 사회는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엘리트 계층은 신화를 이용해 자신들의 부정부패를 용인했고, 이러한 폐해가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이어졌다. 저자는 “대중은 자신들 대신 결정할 적임자를 필요로 하고, 그 적임자만 있으면 사회가 매끄럽게 굴러갈 것이라고 믿는다”며 “능력주의는 인종, 성, 성적 취향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약속이지만, 그 대신 인간이 능력과 진취성에서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하에 새로운 계급을 인정하는 신념”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사회학자 제롬 카라벨의 말을 인용해 “선진국 중에서 미국만큼 기회의 평등에 집착하면서 조건의 평등에 무관심한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능력주의 사회의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 “미국을 더 평등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브라질의 빈부격차가 해소된 배경에는 빈곤층에 대한 분배정책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하며, 미국에서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더 평등한 사회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이 불가능하거나, 여론의 반대가 많아서가 아니다”며 “극심한 빈부격차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세력과 기관들이 평등주의의 습격으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과도하게 키운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책은 미국 사례를 바탕으로 전개되지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능력주의를 우선시하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높은 지능은 권력층에게 빠져서는 안 될 필수적인 덕목이지만, 능력주의 사회의 특징은 ‘똑똑함의 칭송’에서 그치지 않는다. … 명석함은 순위를 매길 수 있고, 그래서 부에 순위를 매기듯 지능에도 순위를 매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회에서 지능은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