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프랑스서 19세기 ‘군사작전용 12점자’ 첫 고안

점자의 구성과 유래 / 맹인 브라유가 6점으로 재창안 / 美선 4점 나와… 소통 혼란 겪기도 / 박두성 선생 1926년 한글로 반포 ‘알알이 박힌 한글점자 91년, 100년의 미래도 우리손으로!’

4일로 91주년을 맞은 ‘점자의 날’ 슬로건이다. ‘점자의 날’은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칭송되는 송암 박두성(1888~1963) 선생이 한글점자를 만들어 1926년 11월 4일 반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더욱이 올해는 지난해 제정된 점자법이 5월 30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그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한다. 특수 문자가 공식 문자로 인정된 만큼, 앞으로 점자에 대한 관심 또한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점자가 표기된 각종 안내표식(왼쪽), 캔 용기에 표기된 점자.
◆한글점자의 창안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홀 여사가 1898년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평양점자)를 만들어 평양에서 맹여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4점 점자였던 평양점자는 자음의 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았으며, 자모 중 일부를 2칸으로 제자한 탓에 우리나라 점자로 정착되기엔 한계를 지녔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점자인 평양점자는 약 28년 동안 맹인용 문자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총독부가 1913년 제생원을 설립하고 일본의 6점 점자인 ‘훈맹점자’를 가르쳤다. 이를 배운 맹인들은 6점 점자가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그의 제자들은 1920년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한글점자 연구를 시작하여 1923년 ‘3-2점자’(자음 3점, 모음 2점)를 제정했다. 그러나 3-2점자는 자음의 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아 다시 보완해 1926년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창안, 발표했다.

◆한글점자의 정비

광복 이후 한글을 되찾자 한글점자도 정비할 기회를 맞았다. 1947년 서울맹학교 교사 이종덕은 이중모음과 약자·약어를 제자하고, 한글점자 외에도 수학점자, 과학점자, 점자악보 등을 마련했다.

1982년 ‘한국점자통일안’에 이어 1994년 한국점자연구위원회의 연구 결과 ‘개정 한국점자통일안’이 나왔다. 물음표와 감탄표만 사용하던 것을 모든 문장부호 사용으로 개정하고 이중 표기가 많아 표준한글점자를 제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997년 ‘한국점자규정’에 이어 2006년 ‘개정 한국점자규정’을 고시했다.

김신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