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스토리] 일상의 쉼표… 글씨는 마음이다

'캘리그래피' 열풍… SNS에 퍼지는 ‘아날로그 감성’ / 정성 가득 담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 / 힐링 손글씨 써서 게재 유행처럼 번져…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취미로 인기 / 디자인 업계 ‘블루칩’ 급성장 / 간판·일상용품 등 생활곳곳 자리잡아… 영화·드라마·출판업계서 활약도 눈길 / 미술계 어엿한 예술분야로 인정 추세
2년 전 처음 붓을 잡은 주부 이현주(35)씨는 어느덧 주변으로부터 ‘작가’ 소리를 듣는 실력자가 됐다. “부업으로 쏠쏠하다”는 풍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후 손글씨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차곡차곡 쌓은 글씨로 가득하다. 최근에는 가게를 창업하는 한 지인에게서 간판 글귀 의뢰도 들어왔다. 책 출판을 목표로 하는 그에게 캘리그래피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원동력”이 됐다.

지난 추석 직접 쓴 손글씨를 친구들에게 선물한 직장인 정모(43)씨도 비록 전문가만큼 뛰어난 솜씨는 아니었지만 선물을 받은 친구들의 반응에 어깨가 으쓱했다.

정성이 담긴 손글씨가 현대인의 감성을 적시고 있다. 과거 ‘고리타분’의 대명사로 치부되던 붓글씨는 어느 샌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즐기는 취미가 됐다. 거리의 간판을 비롯해 일상용품 등 생활 곳곳에 캘리그래피가 자리 잡았고 주류 미술계에서도 당당히 인정받는 분위기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한 아날로그에 대한 욕구는 캘리그래피가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는 이유로 꼽힌다.

‘캘리그래피’는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널리 사용되면서 각광받았고 이후 디자인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영화포털
◆‘SNS 시대’의 감성을 건드리다

‘172만8000건.’

3일 현재 인스타그램에 ‘#캘리그래피’로 태그된 이 같은 게시글의 수에서 볼 수 있듯 캘리그래피는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 이후 극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전문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직접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감성글’을 써서 SNS에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캘리그래피’란 단어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 등록된 캘리그래피 관련 단행본 160권 중 145권(90.6%)이 2010년 이후 출판된 것들이다.

캘리그래피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모은 시기는 공교롭게도 ‘힐링’이란 단어가 유행한 시점과 일치한다. 현대사회의 피로감이 사회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던 때에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손글씨가 디지털로 둘러싸인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광호 캘리그래피 작가는 “연필과 편지를 키보드와 이메일이 대체한 이 시대에 ‘직접 쓴 글을 쓴다’는 것은 감성과 예술적 욕구 충족 등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전미영 서울대 교수(소비자트렌드)는 “말 그대로 ‘수제’인 캘리그래피는 기계적이고 반듯한 것에 질린 현대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SNS를 통해 남에게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청년세대의 욕구와도 절묘하게 맞물렸다는 시각도 있다,

◆미술계에서도 인정… ‘서예 붐’ 기대도

상업적 성격이 두드러진 탓에 주류 미술계로부터 외면받던 캘리그래피도 이제는 어엿한 예술 분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2013년부터 초·중·고교 미술 교과서에 캘리그래피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고 국내 최대 규모의 신인미술작가 등용문으로 알려진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도 수년 전부터 캘리그래피를 서예부문으로 접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캘리그래피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면서도 현대인이 요구하는 감성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등 예술적 가치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다.

서예계에서는 내심 캘리그래피의 인기를 지렛대 삼아 대중에게 외면받던 서예의 ‘제2의 부흥’을 기대하기도 한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