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안보보다 정치” 무기도입에 숨겨진 정치권의 계산법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수십억달러 규모의 첨단무기 구매를 약속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고 기가 막혔다.”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본 진보 진영 관계자가 한 말이다. 미국의 요구에 노(No)라고 말할 것으로 예상했던 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브로맨스에 가까울 정도의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당혹감이 묻어있었다.

유럽 에어버스의 A330 MRTT 공중급유기는 당초 예상을 깨고 한국 공군의 공중급유기로 선정됐다.
에어버스 제공
항공전문가들은 공중정찰자산의 변화 추세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전에는 조인트 스타즈나 E-3 조기경보기처럼 대형 기체에 장비를 탑재했다. 전자장비 크기를 작게 만드는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IT의 발달로 작은 크기의 장비로도 우수한 성능을 낼 수 있게 되면서 대당 단가와 운영유지비가 저렴한 비즈니스 제트기를 플랫폼으로 사용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공군의 조인트 스타즈 대체 사업에서 록히드마틴과 노스롭 그루먼은 봄바디어나 걸프스트림 중형 비즈니스 제트기에 첨단 레이더를 장착한 정찰기를 제안하고 있다. 영국이 사용중인 아스토(ASTOR) 정찰기도 봄바디어 비즈니스 제트기에 전자장비를 얹은 형태다. 사브의 글로벌아이와 IAI의 G550 조기경보기도 비즈니스 제트기다. 첨단 장비의 운영유지비가 폭증해 재정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을 피하려면 이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방위산업 시장 특성을 갖고 있다. 사우디처럼 100% 무기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도 아니고, 대만이나 일본처럼 미국제 무기만 구입하는 나라도 아니다. 국산 무기와 외국 무기가 서로 경쟁하고, 미국 방산업체와 유럽 등 제3국 방산업체가 사업 수주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경쟁을 촉진해 예산을 절감하고 무기도입 대가로 기술을 이전받고 부품생산물량을 확보해 국내 방위산업을 진흥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이같은 조건을 잘 활용한다면 국가안보는 물론 방산수출로 더 많은 국익을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고려’에 의해 미국제 첨단무기만 바라보고 무기도입사업을 추진하면서 가격은 비싸게 주고 기술이전은 적게 받는 형태가 반복됐다. 그 결과 핵심기술 분야에서의 해외 의존도는 낮아지지 않고 있다.

수의계약을 했던 F-35A 도입과정에서 발생한 한국형전투기(KF-X) 관련 핵심기술이전 문제와 중고 S-3B 도입 검토, 주한미군 중고 CH-47 수송헬기 도입 등 이명박, 박근혜정부의 정책결정을 비판하면서 방위산업 진흥과 국방획득체계 개선을 강조했던 현 여권이 미국제 첨단무기 도입 문제를 ‘정치적 고려’에 의한 계산에 따라 처리할 것인지, 법과 규정에 의거해 원칙대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에 필요한 무기 대부분을 미국에서 도입하는 것만이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정치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원칙에 따른 안보이익 증진이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의 존중을 이끌어낼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