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나누며] “자연스런 소리에 아날로그 감성… LP 미래 밝아”

국내 유일 LP제작사 ‘마장뮤직’ 하종욱 대표·백희성 실장 “LP의 최고 매력은 단 하나, ‘소리가 좋다’입니다. 풍부하고 따뜻하고 자연스러워요. 소리에는 원래 온기와 향기가 있다고 믿어요. 이를 담을 수 있는 최적의 매체가 엘피예요. 이 온기와 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만나 마장뮤직이 탄생했죠.”

국내 유일 LP 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46) 대표이사는 LP의 매력을 이렇게 설파한다. 마장뮤직은 2004년 서라벌레코드가 사업을 접은 후 국내에 13년 만에 다시 생긴 LP 제작사다. 공식 영업을 시작한 건 올 6월부터다. 최근 서울 강남구 마장뮤직 사옥에서 하 대표와 국내 아날로그 녹음의 1인자 백희성(44) 실장을 만났다. CD조차 거추장스러워진 시대에 청개구리처럼 LP 제작에 뛰어든 이유를 물었다. 두 사람은 “지난 20년간 디지털음악 시대에 박탈감·상실감을 느꼈다”고 했다.

“LP는 불편해요. 바늘을 올리고 판을 뒤집고. 하지만 음악의 본질인 소리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담을 수 있어요. 디지털이 범람하는 시대에 질린 사람들이 ‘예전 음악은 이런 아름다움이 있었지, 가수 목소리는 이랬지’ 하고 기억을 더듬어가다 서로 뜻이 맞았어요.”(하 대표)

국내 유일 LP 제작사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이사와 백희성 실장(오른쪽)은 “우리가 귀로 듣는 모든 소리는 자연의 소리이고, 아날로그”라며 “LP는 이 자연스러운 소리를 그대로 물리적으로 담아 재생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문 기자
이들은 10년 넘게 아날로그 음악의 한길을 파왔다. 아날로그 녹음 스튜디오에서 일해온 백 실장은 2005년부터 LP 관련 기술을 조사했다. 하 대표는 옆에서 ‘돈 안 된다’며 말리곤 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LP 공장이 서서히 문을 닫았어요. 기술자 분들은 다 전업하고 LP 제작 기술의 맥이 거의 끊겼었죠. 녹음, 커팅, 프레스(압출성형) 기술자 선배들 연락처를 어떻게든 알아내서 방방곡곡 어렵게 찾아다니며 기술을 전수했어요.”(백 실장)

이런 끈기는 ‘국산 프레스(압출성형) 기계’ 제작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백 실장은 “해외에서도 LP 기술이 정체되면서 1970년대 기계를 그대로 쓰고 있다”며 “오래된 기계로는 실생산에 문제가 생길 듯해 아예 국내 기술로 만들어보자고 도전했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전날 독일의 모던바이닐이라는 작은 LP 공장에서 이메일이 왔다”며 기술력을 인정받은 실례를 보여줬다. 모던바이닐 측은 ‘웹사이트에서 봤는데 프레스 기계가 훌륭해 보인다’며 한 대를 구매할 수 있는지 문의해왔다. 소비자들도 응원을 보내고 있다. 지난 6개월간 시장 반응에 대해 하 대표는 “폭발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예약이 차 있다”고 한다.

“음악 전문가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는데 외국 고급반과 식별이 안 될 정도라고 했어요. 소비자들도 ‘이 정도면 고급반의 면모를 갖췄다’고 평가해요. 그간 많은 음악 기획사들이 체코나 독일, 영국, 일본 공장에 LP를 주문해왔어요. 잘 나올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6개월 정도 순번을 기다려서야 받아봤죠. 그러다 저희가 등장하니 예상 주문량의 몇 배가 들어오더라고요. 공장에서 야근에다 주말 근무까지 해야 해서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예요.”

이들은 최근 “전 세계 통틀어 가장 까다로운 입맛과 기호를 지닌 한국 아날로그족의 시험대를 통과했다”고 자부했다. 20세기 중반 활동한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요한나 마르치의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집 재발매가 그것이다. 하 대표는 “어차피 넘어야 할 난제 중 하나가 마르치였다”고 소개했다. 마르치가 1955년 영국 컬럼비아 레코드(현 워너 클래식)에서 발매한 바흐 LP 원반은 2015년 이베이에서 1200만원쯤에 낙찰됐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하 대표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서로 ‘들어봤냐’ ‘LP 하면 마르치지’ 이러면서 전설처럼 각인된, 표상처럼 남은 음반”이라고 설명했다. 마장뮤직은 지난달 말 이 LP 전집을 발매했다. 워너 클래식에서 마스터 음원을 직접 제공받았다. 하 대표는 “‘이걸 해내면 인정해줄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팔짱 끼고 지켜보던 애호가들이 음반을 들어본 후 따뜻하게 팔을 풀고 격려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LP의 미래가 밝다고 전망한다. 하 대표는 “국내 LP 시장은 걸음마 수준이지만 지난해 판매량은 28만장, 올해는 32만장 정도, 매출 규모는 100억원대로 추산된다”며 “캐나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는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LP를 ‘미래 세대의 음악’이라고 예언했다”고 설명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