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레나강을 가다] 척박함 속 생명 이어온 127개 민족… ‘기회의 땅’ 희망을 노래하다

〈9〉 사하공화국 주민의 삶과 변화 이 글에서는 사하공화국 주민이 그동안 어떠한 삶을 살았고, 또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1632년 현재의 사하공화국에 거주했던 야쿠트인을 비롯해 여러 소수 민족들이 러시아에 정복된 후, 사하는 17~18세기 동북부의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떠나는 러시아 원정대의 출발지로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됐다. 또한 사하는 값비싼 모피, 매머드 뼈, 공산품과 생필품, 농작물 등이 거래되는 시베리아 동북부의 무역 중심지가 됐다. 19세기 말부터는 다양한 광물자원이 채굴되기 시작해 20세기 러시아의 중요한 경제적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북극권 마을 지간스크 주민들이 한국의 강강술래와 같은 원무를 추고 있다. 외형 상 주민들의 삶은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였 지만 지간스크는 1990년대 시장 개혁 이후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다.
사하는 과거부터 유형지로도 유명했다. 레나강은 사하를 가로지르는 가장 큰 강인데 1649년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황제는 ‘레나강에서의 거주’형이라는 벌을 만들어 법전에 형벌로 규정토록 했다. 그럴 정도로 사하는 인간이 살기에 척박한 곳이다. D 다비도프, I 곤차로프, N 체르니솁스키 같은 문학 작가들은 이곳을 방문해 북부 도시의 혹독한 상황을 작품 속에 담기도 했다. 사하의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62℃이며, 여름에는 영상 38℃까지 올라가니 이것만으로도 이곳이 얼마나 극한 지대인지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사하공화국에는 127개 민족이 살고 있는데 인구 수로는 야쿠트인이 약 3분의 1, 러시아인이 약 절반을 차지하며, 그밖에 에벤, 에벤키, 유카기르, 축차, 돌간 등 북방 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인과 야쿠트인은 인종적으로 계속 통합되어 갔는데, 이것은 주로 산업 및 도시 지역에서 더 활발히 일어나 이곳의 순수한 야쿠트인 비율은 이제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농촌 지역에서는 야쿠트인 비율이 80%에 달할 정도로 높다. 현재 사하공화국 인구는 약 100만명으로 약 3분의 2는 도시, 3분의 1은 농촌에 산다. 

북극권 지역 주민들에게 레나강은 생명줄이다. 레나강에서 잡은 물고기은 크스타티암 주민들에게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21세기 사하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러시아는 1990년대 시장 개혁 이후 전 지역에 걸쳐 국가적 차원의 사회변동을 겪었다. 처음에는 모스크바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가 2000년대 이후에는 전 지역으로 퍼져 이제는 변경 지대에서도 큰 폭의 사회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우랄, 시베리아, 북극권 지역은 석유, 가스, 금속 등 지하자원 채굴 및 수출 산업 발전과 관련하여 엄청난 사회·경제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세계화의 영향도 강하게 받고 있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와 같은 북극권의 자연환경 변화는 사회변동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2000년대 중반 학자들은 러시아 북극 민족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다음과 같이 악화하였다고 평가한다. 1인당 소득, 주택, 다양한 사회복지 지수들이 평균 이하로 떨어졌다. 러시아 실업자의 5분의 1, 임금체납자들의 절반이 북극 거주자들이었다. 원주민의 평균 수명은 러시아 국민 전체 평균보다 10~11년이 낮아졌다. 2003~09년에만 출생률은 34%가 낮아졌고, 사망률은 42%가 높아졌다. 산업 지역의 생태학적 환경은 원주민들이 거주하기에 매우 좋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또한 외부로부터 이주민이 유입되면서 원주민의 정착지와 사회적 인프라가 훼손되었다.

그리고 항공과 기타 운송비용이 비싸져 생산품의 60%가 필요한 장소로 전달되지 않고 파손되었다. 순록의 수가 줄었으며, 물고기 어획량, 모피 생산량, 해양 동물 포획량은 절반으로 줄었고, 버섯, 딸기 견과류, 약용 식물의 생산량도 줄었다. 순록 사육인, 어부, 수렵인에 대한 의료, 문화, 상업, 일상 서비스 수준은 낮아졌고, 주택 건설도 침체됐다. 또한 전통 민속 예술의 독창적인 모습도 사라졌다고 평가됐다. 

에벤키 가죽옷 장인은 짐승의 모피를 수백번 무두질하여 부드럽게 가공한다. 이러한 작업은 수백, 수천년을 이어 내려온 그들의 생활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북극 지역의 사회·경제적 발전 양상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사하는 카렐리야, 코미, 아르한겔스크, 무르만스크, 캄차카, 마가단, 사할린과 함께 중간 정도 발전한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네네츠, 한티-만시, 야말-네네츠 자치구는 가장 발전한 지역으로 분류되며, 나머지 북극 지역은 발전 수준이 낮은 곳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사하는 북극 지역에서 중간 정도 발전한 곳으로 평가되지만 2010년대에 들어와 사하 주민의 삶은 몇 가지 통계지표로 볼 때 다소 개선되는 양상을 보인다. 1990년대 시장 개혁 이후 러시아의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는 인구 감소였다. 1990년 러시아 인구의 자연증가율은 1000명당 2.2명이었는데, 2000년대에는 -6~-7명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012년부터는 플러스 상태로 돌아섰다. 사하의 자연증가율은 1990년에 1000명당 12.7명이었다가 2000년대 중반에는 4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그 후 차츰 회복되어 2010년대 이후는 8~9명을 유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하 인구의 자연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떨어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2010년대 이후는 한티-만시스크, 야말-네네츠 자치구에 이어 북극 지역 중 가장 양호한 인구의 자연증가세를 보인다.

북극권 지역은 기본적으로 주민이 정상적으로 거주하기 힘든 곳이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주민의 거주를 유지하는 연방 및 지방 정부들의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시장 개혁 이후 이러한 지원 시스템과 사회·경제 인프라가 와해되면서 주민이 유출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 현상은 향후 북극권 개발을 앞두고 중대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되고 있다.

사하의 경우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1990년대에는 사하의 인구 유출이 1만명당 200명을 넘은 해도 있었고, 2010년대에도 매년 1만명당 50~100명이 유출되고 있어 이것은 여전히 심각한 사회 문제로 꼽히고 있다.

게다가 2005년 노동 가능 연령대 비율이 65%였는데 2015년 60%로 낮아졌고, 노동 가능 연령대 이상 비율은 같은 기간 10%에서 16%로 높아져 전반적으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최우익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교수
해당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 지표 중 하나는 1인당 월평균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사하의 경우 2000년대 초반에는 러시아의 85개 주 중에서 4위를 차지할 정도로 1인당 월평균 소득이 높았다.

하지만 2010년에 13위까지 떨어졌다가 2015년 시점에는 80여만원으로 10위까지 회복된 상태이다. 해당 지역 주민의 평균 소득 수준이 높다고 하더라도 빈부격차가 크면 그것은 심각한 사회적 긴장을 초래할 수 있다. 사회적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2000년 0.360이었는데 이것이 점차 상승해 2013년에는 0.407까지 올랐다. 보통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불평등 상황이 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2015년에는 0.398로 낮아져 다소 빈부격차가 줄었다.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자 비율도 2000년대에는 20%가 넘을 때가 있었지만, 2008년 이후는 20% 미만으로 낮아져 이것 역시 삶의 수준이 다소 개선된 징후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북극권 주민은 이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거주해온 원주민이거나 이 지역의 노동, 관리, 경영을 담당하는 지역 주민이다. 이들이 건강한 주체로 유지된다는 것은 곧 북극권을 성공적으로 개발함과 동시에 보전도 할 수 있는, 즉 ‘지속 가능한 개발’의 징표가 될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사하공화국 주민의 삶이 더욱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최우익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