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화·악마화 사이서 복기한 인간 레닌을 만나다

로버트 서비스 지음/김남섭 옮김/교양인/3만8000원
레닌/로버트 서비스 지음/김남섭 옮김/교양인/3만8000원


러시아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의 생애를 기록했다. 올해 출판계에 불었던 ‘러시아혁명 100주년’ 열풍에 종지부를 찍은 책이다. 저자인 로버트 서비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소련공산당 중앙당 문서고에 봉인된 레닌 관련 기록들을 샅샅이 뒤졌다. 신격화와 악마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레닌을 복기해냈다.

레닌에게 의문인 것 중 하나는 ‘교양 있는 부르주아 집안 출신인 그가 어떻게 사회주의 혁명가가 됐는가’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레닌은 부모의 교육열 덕분에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러나 대학생 형이 차르 암살 음모에 연루돼 처형되면서 모범생에서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다. 레닌의 눈에 러시아는 부패하고 발전 가능성이 없는 나라였다.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한 레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해방투쟁동맹을 결성했다가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3년간의 유형 생활을 마친 뒤 풀려나, 17년 동안 떠돌면서 혁명의 방법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정이 무너지고 온건한 임시정부가 들어서자 볼셰비키당 레닌은 무장봉기에 나섰다. 볼셰비키당은 온건 사회주의자가 이끄는 임시정부를 끌어내리고 권력을 차지한다. 레닌은 최고 권력자가 됐지만 소비에트연방은 불안정했다. 레닌은 사회주의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폴란드를 침공했다가 패배하고, 노선이 다른 분파는 무력으로 제압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경제정책도 도입했다.

저자는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레닌이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폭군과도 같은 스탈린의 집권이 미뤄졌고, 소련이 지향하는 사회주의도 바뀌었을 것이라는, 낭만적인 주장에 분명히 반대한다. 공산주의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 레닌이고 스탈린은 그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저자는 “레닌은 윤리를 제거했고, 독재를 정당화했다. 다만 자신의 마르크스주의가 순수하며 유일하게 올바른 정책을 구현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고 평했다. 한국 내에서도 볼셰비키가 민주적이고, 레닌이 독재나 공포정치를 끝내려고 했다고 주장하는 진보 인사들이 적지 않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