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수산물 선물 10만원·경조사비 5만원…빗장 푼 배경은

권익위, 청탁금지법 개정안 의결 / 늦어도 내년 설 연휴 前 시행 / 음식은 현행 3만원 유지키로 / 경조사비 화환 포함 땐 10만원 / 정치권 “존중”“취지훼손” 엇갈려 청탁금지법이 허용하는 ‘3(음식)·5(선물)·10(경조사비)’ 규정이 법 시행 1년 3개월 만에 개정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1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선물비 상한액을 농축수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고, 경조사비는 5만원으로 낮추는 내용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늦어도 내년 설 연휴 이전에는 개정된 시행령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 참석해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고 있다. 이날 권익위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허용하는 선물비의 상한액을 농축수산물에 한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고, 경조사비는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추는 개정안을 가결했다.
연합뉴스

권익위가 이날 전원위원회의에서 처리한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은 현재의 ‘3(음식)·5(선물)·10(경조사비)’ 한도 규정을 ‘3·5+@(플러스 알파)’로 변경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앞서 지난달 27일 전원위원회가 부결한 안건을 거의 그대로 다시 올려 통과시켰다. 음식은 현행 3만원을 유지하지만, 선물은 농축수산물과 농축수산물 가공품에 대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한액을 올렸다. 현행 10만원인 경조사비 한도액은 5만원으로 낮췄지만, 화환을 포함하면 그대로 10만원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현금과 화환을 각 5만원씩 전달해도 법 위반이 아니라는 의미다.

권익위는 12일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해 청탁금지법의 효과와 부작용, 향후 운영방향 등을 발표한다. 정부는 앞으로 입법예고,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 후속 절차를 신속히 추진해 내년 설 대목에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의 효과가 나타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권익위가 청탁금지법의 빗장을 풀어준 배경에는 농어업 및 축산, 화훼 농가 등의 끊임없는 개정 요구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탁금지법은 2012년 당시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처음 제도 도입을 추진할 때부터 정치권과 재계 등의 강한 반발에 맞닥뜨렸다. 정부 내부에서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뒤따르면서 수차례 법안 내용에 대한 칼질을 거듭한 끝에 2015년 3월에야 청탁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시행시기도 1년 반이나 유예를 뒀다. 청탁금지법의 산파 노릇을 한 권익위는 내수 침체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재계와 최초 법 취지를 상당 부분 훼손시켰다는 국민 여론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했다. 권익위가 그간 ‘3·5·10’ 규정을 금과옥조처럼 고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업무보고에서 피해업계에 대한 구제대책을 포함해 청탁금지법 개정 문제를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내놓은 청탁금지법의 경제적 영향분석 결과, 최근 1년간 한우 가격은 6.7%, 화훼 거래액은 0.39% 하락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권익위 내부에서도 개정 의견이 힘을 받았다.

권익위는 법 취지 퇴색을 우려하는 일부 위원들의 인식을 감안해 이날 전원위원회의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되, ‘부대 의견’을 명시했다. 전원위는 “청탁금지법의 본질적 취지 및 내용을 완화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며 “청탁금지법의 안정적 정착까지는 3·5·10 규정 추가 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추가로 청탁금지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현재 제출돼 있는 10여건의 청탁금지법 개정안을 심의할 예정이지만, 개별 위원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상태다. 권익위의 시행령 개정에 대한 반응도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각각 “권익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박완주 수석대변인), “늦었지만 다행”(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법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이행자 대변인)고 지적했고, 정의당도 “국민들의 염원을 뒤로 물리는 일이고 법안 자체를 흔드는 방식”(추혜선 대변인)이라고 비판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