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오웰·말로… 이들은 왜 그곳에 갔는가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 2차 대전 전초전이자 이념격전장 / 스페인내전이 갖는 의미 재조명 / 세계 각국서 국제의용군 참전 / 저마다 자신 이상위해 목숨 던져 / 국제사회 외면… 공화파는 패배
공화파군이 점령한 스페인 동부에 있는 도시 테루엘에서 맬컴 던바 제15국제여단 작전 사령관, 허버트 매슈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엔리크 리스테르 장군(왼쪽부터)이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공
1938년 10월 28일 바르셀로나 어느 가을날, 누더기 군복에 제각각의 군화, 초라한 침낭을 멘 장병들이 의기양양하게 시내를 행진했다. 오합지졸 행색의 군인들에 대해 시민들은 환호했다. 미국,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전 세계에서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참전하기 위해 모인 국제의용군 모습이었다. 사냥총도 잡아본 적 없던 이 뜨내기들은 앞으로 벌어질 참혹한 전쟁에서 몰살당할 운명을 아직은 모르는 듯했다.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애덤 호크실드 지음/이순호 옮김/갈라파고스/2만9000원
스페인 내전은 2차 대전만큼이나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준다. 겉으로 스페인 내전은 중산층과 노동자의 지지를 받는 공화파와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국가주의 세력(교회, 지주, 군부, 자본가) 간의 전쟁이었다. 실제로는 자유민주주의(공화파)와 파시즘(국가주의파) 간 이념 전쟁 성격이 짙었다. 최후 승자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파시스트 프랑코였다. 그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도움으로 공화파를 제압, 30여 년 무단통치의 길을 열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최신 전투기와 탱크, 훈련된 병사들을 보내 프랑코를 지원했다. 스페인 내전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신무기 실험장이었으며, 전투 훈련장이었다. 공화파는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의 도움을 바랐으나 모른 체했다. 당시 미국은 경제 대공황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자유주의 공화파에 지원하겠다고 나선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었다. 프랑코, 히틀러, 무솔리니가 친구로 엮일 경우 스탈린에겐 악몽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 내전이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이름없이 희생된 수만명의 보통 사람이 아니라, 유명인들 덕분이었다. 종군기자로 취재왔다가 공화파 게릴라에 몸담았던 경험을 담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공화파 유격대 조직원으로 회고록 ‘카탈루냐 찬가’를 남긴 조지 오웰, 비행사로 공화파를 지원한 프랑스 행동주의 작가 앙드레 말로, 특파원으로 들어와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생텍쥐페리 등이 그들이었다.

이들이 참여한 내전은 앞으로 벌어질 2차 대전의 전초전이었다. 영국과 미국 병사들이 진지로 돌격하는 동안 프랑스 장교가 저격수로 지원했고, 소련 탱크가 그들을 향해 불을 뿜어냈다. 동방정책을 밀어붙인 빌리 브란트도 유능한 독일군 장교로 참전했다. 우스개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프랑코 군대의 폭격기가 투하한 폭탄이 한 발도 터지지 않았다. 공화파 총리 네그린이 후일담에서 전한 말이다. “포르투갈에서 제작된 파시스트 군대의 불발탄을 열어보니 이런 글귀가 있었다. ‘친구여, 이것은 자네를 해칠 폭탄이 아니라네’라고 쓴 기술자들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이렇듯 민중들은 공화파를 지지했지만 공화파는 패하고 말았다. 

1936년 세계 전역에선 파시즘이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권력을 잡았다. 캐나다 총리 윌리엄 매켄지 킹도 히틀러에게 매료되었다. 미국에서도 파시즘 정당이 생겨났다. 만일 공화파의 승리로 끝났다면 2차 대전은 없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스페인 내전의 중요성을 지적해낸다. 천재적 작가들은 전쟁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추구했다. 사회주의,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무정부주의 등 이념은 각기 달랐지만, 세계를 보다 정의롭고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

지금 스페인 내전은 대부분 기억에서 사라졌다. 80년이나 지난 일인 데다 2차 대전 그늘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페인은 투우 또는 플라멩코, 축구의 나라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카탈루냐 분리 독립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내전을 치르는 스페인은 과거처럼 또 다른 거대한 전쟁을 초래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이 책을 통해 과거 스페인 내전을 돌아보는 이유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