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1987' 관람한 文 대통령 "촛불이 6월항쟁 완성"

문재인 대통령은 7일 “항쟁 한번 했다고 세상이 확 달라지거나 하진 않는다”면서도 “역사는 금방금방은 아니지만 긴 세월을 두면서 뚜벅뚜벅 발전해오고 있으며, 우리가 노력하면 세상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서울 용산 CGV에서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6월항쟁으로 영화 ‘택시운전사’의 세상을 끝냈고, 이후 정권교체를 하지 못해 여한으로 남은 6월 항쟁을 완성시켜 준 게 촛불항쟁”이라며 이같은 소감을 남겼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일반 관객과 상영관에서 영화를 본 것은 지난해 ‘택시운전사’와 ‘미씽:사라진 여자’ 이후 세 번째다.

6월항쟁 당시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고 30년 뒤 촛불이 이끈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 대통령과 ‘1987’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31년 전 2월7일 전국에서 열린 ‘고 박종철군 범국민추도회’ 때 부산에서만 181명이 연행됐는데, 그 중 두 명이 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무현재단이 공개한 당시 부산시 경찰국 진술조서를 보면, 문 대통령은 조사 과정에서 “박군 사건을 참회해야 하며 개인적 불행으로 끝내서는 안 되고 우리나라의 인권 상황이나 민주 발전에 획기적 계기가 돼야 한다. 이번 추모제는 국민의 정당한 요구인데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부산 국본(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을 맡아 노 전 대통령(상임집행위원장)과 함께 부산 지역 6월항쟁을 이끈다.

당시 최전선에 섰던 이들이 청와대와 여권 곳곳에도 포진해 있다. 훗날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지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 등 이른바 ‘86세대’가 그들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부산 혜광고·서울대 후배인 박종철 열사에 대한 마음의 빚이 “사회 참여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세 사람도 이날 문 대통령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 영화계로 복귀한 문성근 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도 배우 김윤석씨와 함께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옆에 앉았다. 문 전 최고위원은 영화에서 장세동 안기부장 역을 맡았는데, 그의 아버지 문익환 목사가 이한열 열사 추도식에서 “박종철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라고 부르짖는 장면이 영화 엔딩 장면에 흐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는 문 대통령은 인상 깊은 대사로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를 꼽았다. 극중 이한열의 학교 후배로 등장하는 연희가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엄혹했던 민주화 투쟁의 시기 독재권력도 힘들었지만 부모님이나 주변 친지들의 이런 말도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며 “그러나 세상 바꾸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고, 우리가 힘을 모을 때, 연희도 참가할 때 세상이 바뀐다는 걸 영화가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CGV 용산점에서 영화 ‘1987’을 관람하기 앞서 고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문 대통령은 영화 속 실존인물 및 배우, 제작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씨,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 한재동 전 교도관(유해진 분), 최환 전 서울지검 공안부장(하정우 분), 장준환 감독, 배우 김윤석·강동원씨 등이 함께 했다. 배은심씨는 “영화는 차마 못 보겠다”며 사전 환담을 마친 뒤 자리를 떴다고 한다.

영화 상영 후 무대인사에서 장준환 감독은 “평생 울 거 이 영화로 다 우는 것 같다. 여러 번 봤는데도…”라며 말을 못 이었고, 배우 김윤석씨는 “우리 감독이 눈물이 많습니다. 여기까지고요. 이 영화는 우리 국민이 좀 더 많이 봐야할 영화입니다. 여러분 힘 모아주십시오”라고 했다. 박처원 치안감 역할을 맡은 김윤석씨도 박종철 열사와 혜광고 동문이다. 장 감독은 문 대통령의 인사 후 다시 마이크를 잡고 “1987년 함께한 삼촌들 고모들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드린다)”며 “2017년 또 우리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여러분이 진짜 이 영화의 주인공이고 역사의 주인공이다.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배우 강동원씨는 무대인사 중에도 펑펑 울었다고 관람객들은 전했다. 강씨는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참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게 많은 빚을 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며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는 심정으로 참여한 건데,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아프다. 앞으로도 좋은 영화 찍으면서 보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CGV 용산점에서 영화 ‘1987’을 관람하기 앞서 고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후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지난 정부 때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초를 겪은 문화·예술인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마침 장준환 감독이 부인인 배우 문소리씨와 함께 부부 블랙리스트 영화인이다. 장 감독은 “이 정부(박근혜정부) 안에서 이걸(‘1987’) 완성해낼 수 있을지 걱정됐다”며 비밀리에 영화 제작을 추진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늘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제가 가해자는 아니지만 저 때문에 그런 일들이 생겼고 많이 피해를 보셨으니 늘 가슴 아프다. 블랙리스트 피해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2012년 대선 때 저를 지지하는 활동을 했다거나 문화예술인 지지선언에 이름을 올렸다거나 하는 아주 단순한 이유 하나 때문에 오랜 세월 고통을 겪었다”는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은 “이후 세월호 관련해서 또 많은 분들이 고초를 겪었는데, 그런 일들조차 제가 2012년 대선 때 정권교체에 성공했더라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라는 회한이 늘 있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감독 배우와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극 중 대공수사처장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씨, 이한열 열사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씨, 문 대통령, 장준환 감독, 정원찬 프로듀서.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제가 별로 그 아픔에 대해, 지난날의 고통에 대해 보상해 드릴 길이 별로 없다”면서도 “그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해서 그에 대해서 책임 있는 사람들, 벌 받을 사람들 확실히 책임지고 벌 받게 하는 게 하나의 일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서는 문화·예술인들이 제대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지원을 확대해 나가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오찬에는 서유미(소설가), 신동욱(시인), 윤시중(극단 하땅세 대표), 정유란(문화아이콘 대표·공연기획자), 김서령(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공동대표), 김규리(배우), 백자(본명 백재길·음악감독 겸 가수) 씨 등이 함께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