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FTA 재협상은 美의 큰 실수”라는 석학들의 고언

한·미 간에 진행 중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놓고 미국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그제 열린 ‘2018 전미경제학회(AEA)’ 세미나에서 “미국이 문제 삼는 것은 자동차 등 특정산업”이라며 “자동차 때문에 재협상을 하는 것은 큰 실수”라고 했다. “한국은 미국이 좋아하는 차를 만들지만 미국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적자를 냈다”면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은 잘못된 가설에 근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한·미 FTA와 세계무역기구(WTO)는 모두 미국에 유리한 것”이라며 “이런 것을 포기하고 중상주의로 돌아간다면 미국 수출만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이 없다.

한·미 FTA가 미국에 도움이 됐다는 지표는 차고 넘친다. 2012년 이후만 따져도 한국의 대미 투자는 2.5배, 미국의 대한 서비스수지 흑자는 30% 이상 늘어났다. 관세 인하에 따른 소비자 후생은 미국이 5억1000만달러, 한국은 4억3000만달러 증가했다. 주한 미상공회의소(AMCHAM)가 협정 폐기에 반대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힘을 앞세워 FTA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5일 워싱턴에서 열린 1차 협상에선 자동차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폐기를 거론하면서 주장한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 벨트)’의 자동차·철강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압박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 관세를 부활할 경우 우리나라는 5년간 11조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한다. 양보하지 않을 수 없으니 어떤 결론을 내든 피해는 불가피하다. 철강 규제, 농축산물 개방 확대 요구는 2차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고 한다. 한·미 FTA 발효 이후 강화된 경제동맹의 균열을 부르는 위험스러운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세계 경제는 미·중 갈등 속에 블록화하고 있다. ‘미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는 미국의 입지를 좁힐 것임도 자명하다. “200년 된 무역이론을 무시하고 세계 무역질서와 미국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는 스티글리츠 교수의 경고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미 정부는 석학들의 고언을 귀담아듣고 한·미 FTA의 참뜻을 제대로 새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