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1-18 23:06:24
기사수정 2018-01-18 23:08:20
수천 년 이어지는 ‘돈 사기’ 역사 / ‘국가신용’ 배척하는 가상화폐 / 너도나도 찍어내 이젠 2000종 / 무엇을 믿고 투자하나
반량전(半兩錢)은 동양 화폐사에 획을 그은 돈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우주관을 본떠 만든 엽전이다. 기원전 221년 전국(戰國)을 통일한 진(秦) 시황이 만들었다. 돈이 하나로 통일된 것은 이때다. 엽전 하나에 청동 반 냥. ‘반 냥의 청동’은 가치를 재는 척도가 됐다.
반량전에는 ‘진정한 돈’의 모습이 담겨 있다. 국가에서 돈을 찍어 내고, 청동 무게를 속이지 않으니 모두가 믿고 거래한다. ‘제국의 신용’으로 만들어진 엽전은 경제를 일으켰다. 강성한 진 제국, 이면에는 반량전이 있었다. 이 척도가 흔들리면? 모든 것은 엉망이 된다. 나라까지 패망한다.
한(漢)은 달랐다. 진을 이은 한 고조 유방. 그때의 경제를 두고 자유방임이라고 한다. 왜? 화폐 주조권을 장악하지 못한 탓이다. 반량전은 폐기되고, 사주전(私鑄錢)이 만들어진다. 사주전은 말 그대로 개인이 만든 돈이다. 이때의 돈을 유협전이라고 한다. 반량전의 4분의 1 무게의 청동으로 엽전 하나를 만들었다. 그 엽전에 ‘반 냥’ 가치를 매겼으니 어찌 됐을까. 물가는 폭등하고, 경제는 엉망이 됐다. 돈을 만든 세력가는 부를 산더미처럼 쌓았다. 화폐는 요물로 변했다.
그즈음 재상 가산이 남긴 말, “돈은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부귀영화를 살 수 있다. 군주가 화폐 권력을 백성과 나눠가지면 나라는 오래 갈 수 없다.” 사마천의 사주전 평가, “재물과 이익만 좇는 소인배가 만든 돈이다.” 화폐 주조권이 국가에 돌아간 것은 기원전 113년, 한 무제 때다. 다시 강성해진 한이 위만 조선을 무너뜨린 것은 이때다.
돈은 파란의 역사를 되풀이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돈의 역사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국가 신용의 발전사다. 서양도 똑같다. 그러기에 지금 모든 나라는 화폐 발행을 국가에서 관리한다.
가상화폐 비트코인. 4차 산업혁명시대의 돈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다큐멘터리 ‘The rise and rise of bitcoin’.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소리쳤다. “값이 오르고 있다. 가치가 증명되고 있다.” 묻게 된다. 그들은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기능하기를 원한 걸까, 코인으로 부를 쌓기를 원한 걸까. 전자라면 값이 오르는 것에 흥분할 이유가 없고, 후자라면 청동의 양을 속여 배를 불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원·달러·유로·엔·위안화…. 이들 화폐를 발행하는 나라치고 돈값이 뛰기를 바라는 곳이 있던가. 없다. 정상적인 돈이라면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는 수단일 뿐, 축재 수단일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제도가 생기기 이전부터 ‘가치 안정’이 통화의 핵심가치인 것은 이 때문이다.
‘돈 놓고 돈 먹기’ 판이 벌어진다. 미래의 화폐? 미래의 돈은 자고 나면 값이 수십, 수백 배 뛰는 걸까. 터무니없는 소리다.
블록체인 기술이 화폐로서의 가치를 담보한다고 한다. 그럴까. 블록체인은 기술이다. 돈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이 기술은 다른 인터넷 거래에도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위조 화폐를 만들지 못하고 훔치지 못하니 화폐”라고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비트코인은 어떤 신용을 바탕으로 할까. 국가가 가치를 담보하지 않는 ‘사전’이다. 2000종 넘는 가상화폐가 들끓는다. 세계 비트코인의 40%는 약 1000명이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쯤 큰 부자가 됐을 게다. 그것을 보고 너도나도 가상화폐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들은 도덕적인 철인일까, 그저 그런 사람일까. 신용은 도덕성을 먹고 자라난 열매다. 신용의 정점에는 국가가 서 있다. 무엇을 믿고 비트코인에 다중의 운명을 맡기겠는가.
비트코인 주창자들은 ‘자유주의’를 부르짖는다. 화폐 발행의 국가 독점을 거부하는 말이다. 사주전을 주조한 세력과 무엇이 다를까. JP모건 최고경영자 제이미 다이먼, “비트코인은 사기다.” 유럽 증시감독국 스티븐 마이주 의장은 이런 말을 했다.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돈을 모두 잃을 각오를 하라.” ‘모래성 같은 신용’을 꿰뚫어 보기에 하는 말이다. 각국이 자국 통화와 가치를 일치시킨 가상화폐를 만든다면? 비트코인은 설 땅을 잃는다.
‘사전’ 비트코인. 그 생명은 오래갈 것 같지 않다.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