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스토리] “나도 배우다”…누구나 무대 주인공 ‘생활연극’

프로 연극인들이 일반인 기초 교육 / 반복되는 일상탈출… 성찰 기회로

“마침내 오늘 무대에 오릅니다. 저도 이제 진짜 배우가 되네요.”

6년차 유치원 교사 양선아(30)씨는 27일 오후 5시, 28일 오후 3시와 6시 세 차례 서울 대학로 소극장 공간아울에서 상연하는 연극 ‘맹진사댁 경사’의 맹진사 딸 갑분 역으로 당당히 무대에 선다. 배우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감정 소모가 많은 직업이에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다가 연극을 만난 겁니다. 연극은 속에 있는 모습을 끄집어내 마음껏 분출할 수 있어서 정신적 안정감이 크다는 게 장점이에요. 어디 가서 이렇게 맘껏 소리 질러보고 웃거나 울어보겠어요. 일상 속에선 그럴 기회도 장소도 없잖아요.”

선아씨가 한국생활연극협회의 문을 두드린 건 불과 석 달 전의 일이다. 한국생활연극협회(이사장 정중헌)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초과정을 통해 연극에 대한 이해를 돕고, 직접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발족한 전국 조직의 사단법인체다.

‘배우가 되고 싶고, 무대에 서고 싶은 일반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프로 연극인들이 지도하고 협동작업을 함으로써 지역 생활연극을 활성화하고, 회원 친목을 도모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협회의 목표’라는 취지문의 구절이 눈에 쏙 들더란다. 

명진사댁 경사 양선아. 이재문기자
선아씨는 평일 오후 8∼10시, 토·일요일 오후 3∼8시를 연극에 할애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배우는 거라서 처음엔 쑥스럽고 고통스러운 점도 있었는데, 소통이 되고 멤버십이 형성된 뒤로는 연습시간이 제일 재밌더라고요.”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탈출, 삶의 의미 모색, 스트레스 해소, 또다른 인생을 위해…. 저마다 목적은 다르지만 연극을 통해 무대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는 곧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초교육은 처음부터 실전처럼 진행됐다. 호흡법, 발성법, 움직임, 걸음걸이…. 복식호흡은 말하기의 기본이다. 봉산탈춤 이수자로 전통 연희극을 개발해 온 최창주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가 숨쉬기부터 ‘복장 터지는 소리’ 내기, 한정된 공간에서의 동작 표현 등을 가르쳤다. 정해진 동선을 따라 걷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 교수는 맹진사의 아버지 ‘맹노인’ 역으로 직접 출연해 극의 흐름을 거든다.

원로 연출가 김도훈.
연출은 1976년 극단 ‘뿌리’를 창단한 후 40여년간 이끌어온 원로 연출가 김도훈이 맡았다. “20대부터 70대까지 섞여 있고, 습득의 시간차가 커 진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김 연출은 “대부분 직장인이라 시간 내기가 어려워 단막극을 고르기 쉬운데, 고생하더라도 이왕 하는 거, 특히 생애 첫 무대인 만큼 90분짜리 고전해악극 ‘맹진사댁 경사’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김 연출은 “인간다운 삶과 진정한 사랑, 우리를 성찰하는 작품이라 연극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려는 회원들에게 딱 들어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아씨는 “배우라면 연출자의 지시에 체스판의 말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연출 의도를 잘 그려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이번 역할은 아직 제 능력으로 맡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무대에 서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