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세계문학상] 현실과 미래 성찰 다양한 ‘프리즘’… 고유의 개성·매력 갖춰

소재·구성 다양해지고 문장 감각적 / 전반적으로 신선함과 완성도 부족 / ‘스페이스 보이’ 독특한 설정 돋보여 / 폼잡지 않은 이야기 전개력 ‘탁월’
14회 세계문학상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우찬제(문학평론가), 하성란·정이현·은희경(소설가), 서영채(문학평론가), 엄용훈(영화제작자).
남제현 기자
▲ 심사평


제14회 세계문학상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회부된 작품은 총 7편이었다. 각각 고유한 개성과 매력을 갖춘 소설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세계문학상’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걸맞은 신선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선택하기 위해 오랜 시간 진지한 논의를 거듭하였다.

‘복화술과 독순술’은 현실세계를 뒤집는 전복적인 구성이 눈길을 끌었지만, 소설 전체가 이 최초의 설정에 함몰되어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 ‘신데렐라의 후예들’은 저성장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의 가정파산 이후를 다룬 작품이다. 인생의 돌파구를 찾기 힘든 30대 여성의 느리지만 의미 있는 성장기로 읽히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평이하고 밋밋한 전개와, 다소 안이하게 처리된 결말 부분이 지적되었다.

‘러브슈프림 엔터테인먼트’는 인공지능 시대의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기시감이 드는 소재를 읽을 때에는 예상을 뒤집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서사 전개를 기대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어 보였다. 몇몇 부분에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표현이 발견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책과 톱’은 두 소년의 시선을 통해 지구 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진중한 문제의식과 안정적인 문장력이 작가의 오랜 수련을 짐작하게 했으나 두 소년의 시점을 번갈아 취하는 플롯이 단조롭고, 소설의 시간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최종적으로 집중 논의된 작품은 다음 세 편이다. ‘3인칭 관찰자 시점’, ‘러블로그’, ‘스페이스 보이’.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통해, 인간 본성에 깃든 악에 대해 성찰하는 작품이다.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구성이 독특하다. 이런 방식을 통해 세상에 단 하나의 진리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선과 악의 경계를 다각적으로 탐문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재미와 유익함을 함께 가진 작품이라는 칭찬과, 인물의 시점이 너무 자주 변하여 산만하고 주제의식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러블로그’는 ‘글쓰기’의 문제, 허구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 해체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 중층적인 구성을 통해 흥미로운 주제를 설득력 있게 차근차근 전개해가는 솜씨가 상당하다. 작품 곳곳에 감각적 언어와 수준 높은 어희(語?)가 내장되어 있어 소설을 읽는 동안 ‘코미디(comedy)’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때로는 그것이 지나치다 싶거나 단어의 의미론적 왜곡에 이르는 경우가 있었음에도, 독서 후에 묵직한 페이소스가 남는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다.

‘스페이스 보이’는 우주여행 후에 지구로 귀환한 인물의 이야기이다. 그가 방문한 우주는 지구와 똑같은 곳인데 그 이유는 지구인의 미적 기준에 맞추어 만든 세트장이기 때문이라는 설정 등을 시치미 뚝 떼고 아무렇지 않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어깨에 힘을 빼고 어떤 ‘폼’도 잡지 않으면서 주제를 향해 빠르고 정확하게 나아간다. 날렵하고 감각적인 문장도 돋보였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는 화자가 지구로 귀환한 뒤의 상황이다. 국민적 영웅이 된 ‘우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하는 TV의 리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우주에 만들어놓은 세트장과 무엇이 다른가. 이 소설의 관심이 우주가 아니라 지구 혹은 우리를 둘러싼 이 혼란스러운 현실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심사위원들은 긴 논의 끝에 이 대중미디어시대의 구조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성찰하는 ‘스페이스 보이’를 대상으로, ‘러블로그’와 ‘3인칭 관찰자 시점’을 각각 우수작으로 결정하는 데에 합의하였다. 당선자들에게 진심 어린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김성곤 은희경 서영채 우찬제 엄용훈 하성란 정이현

14회 세계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서울 광화문 중식당에서 최종심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은희경(소설가), 서영채(문학평론가), 엄용훈(영화제작자), 하성란(소설가), 우찬제(문학평론가), 정이현씨(소설가).
남제현 기자
▲ 심사과정


14회 세계문학상에는 전년과 비슷한 223편이 응모됐다. 고료 5000만원을 수여하는 대상 수상작 1편, 선인세 1000만원과 단행본 출간이 보장되는 우수작 2편을 뽑는 심사 과정이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시작됐다.

심사위원단 7인 중 소설가 은희경 하성란 정이현, 문학평론가 서영채 우찬제, 영화제작자 엄용훈 등 6인에게 예심용 작품을 배분했다. 이 중 1차에서 걸러진 작품은 ‘러브슈프림 엔터테인먼트’ ‘러블로그’ ‘스페이스 보이’ ‘3인칭 관찰자시점’ ‘신데렐라의 후예들’ ‘책과 톱’ ‘복화술과 독순술’ 등 7편이었다.

1차 통과작들을 제본하여 김성곤 문학평론가를 포함한 7인 심사위원 전원에게 송부했다. 2주 정도 숙독 기간을 거친 후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 중식당에서 김성곤 평론가를 제외한 6인이 참여해 최종 심사를 진행했다.

김성곤 심사위원은 심사 당일이 미국 체류 일정과 겹쳐 예심 통과작에 대한 의견과 전체 순위를 매긴 서면심사의견을 미리 주최 측에 보내왔다.

토론을 거쳐 먼저 3표씩을 행사하고 서면심사의견을 합산해 ‘러브슈프림 엔터테인먼트’ ‘러블로그’ ‘스페이스 보이’ ‘3인칭 관찰자시점’ ‘신데렐라의 후예들’ 등 5편으로 심사 대상을 압축했고, 다시 논의를 거쳐 1표씩을 행사한 결과 ‘스페이스 보이’가 4표를 얻어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후 2차 토론 뒤 2표씩을 행사한 재투표를 통해 ‘러블로그’와 ‘3인칭 관찰자시점’이 우수작으로 최종 선정됐다. 응모하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