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현의세상속물리이야기] 초소형 인간과 초소형 로봇

영화속 인간 축소 프로젝트는 불가능/미니 로봇 에너지 공급·동작 조정 난제
1960년대 영화인 ‘바디 캡슐’, 1980년대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이너스페이스’를 포함, 인간이 초소형으로 줄어든다는 설정은 많은 영화의 단골 소재로 활용돼 왔다. 최근 한 영화에선 인구 과잉의 해결책으로 개발된 인간 축소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스토리가 펼쳐진다. 실현가능성을 떠나 인간이 실제로 줄어든다면 초소형 인간도 우리처럼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축소 프로젝트에선 인간의 부피가 2744분의 1로 축소되는데 이때 표면적은 196분의 1, 길이는 14분의 1로 줄어든다. 신진대사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신체의 부피에 비해 열이 빠져나가는 피부의 면적이 14배나 증가한 만큼 영화 속 미니인간은 늘어난 발열량을 감당하지 못해 체온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초소형 인간으로 축소되는 게 불가능하다면 대체물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바로 초소형 로봇이다. 초소형 로봇은 신체 내부로 진입해 병을 치료하거나 심하게 오염된 지역을 탐색하는 등의 여러 분야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차세대 기술이다. 문제는 이러한 미니 로봇에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거나 로봇의 동작을 원하는 대로 다양하게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요즘 잇따라 발표된 연구 결과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치열한 노력을 보여준다.

독일의 한 연구팀은 연성물질인 실리콘 속에 미세한 자석 입자를 넣은 소형 로봇을 만들고 외부에서 자기장을 걸어 다양한 동작을 시킬 수 있었다. 수 밀리미터의 길쭉한 조각에 불과한 이 소형 로봇은 연구자의 의도에 따라 걷기, 뛰기, 수영하기, 기어오르기, 배달하기 등 매우 다양한 동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독일의 또 다른 연구팀은 유전자(DNA) 자기 조립체를 활용해 한 변이 불과 55nm인 판을 준비한 후 그 위에 길이가 25nm인 로봇팔을 부착했다. 그리고 전기장을 이용해 팔의 방향과 위치를 조정하면서 분자 수준의 화물을 나를 수도 있음을 보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자체 에너지원이 없는 로봇을 외부에서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소형 로봇이 단지 약을 전달하거나 생체공학의 보조적 수단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마이크로나 분자 수준의 공장을 실현하는 기반이 되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이상적인 로봇이라면 주변환경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얻어 이동하는 능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서울대 연구팀은 얼마 전 습도에 다르게 반응하는 두 소재를 접합해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을 구현했다. 습한 표면 위에 놓인 로봇은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습도에 반응해 위아래로 휘어지기를 반복하며 별도의 에너지원 없이 자율적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로봇은 습기가 많은 생체조직 위나 접근이 힘든 습한 지역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수십 분의 일로 축소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정도의 소형 로봇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로봇의 개발에는 생명체의 지혜가 동원된다. 위에 거론한 연구자들은 선충, 자벌레, 식물 씨앗의 동작 등 자연으로부터 초소형 로봇을 성공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결정적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자연의 지혜를 빌려 자연을 더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 로봇 연구의 경향이다. 따지고 보면 생명체만큼 완벽한 로봇이 어디 있겠는가.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