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2-02 23:24:39
기사수정 2018-02-02 23:29:14
中 출신 쌍기, 고려 과거시험 주도 / 외국과의 우호증진에 큰 역할
최근 미국 출신 프로농구 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이름도 ‘라건아(羅健兒)’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에서는 라틀리프를 체육분야 우수 인재로 선정해 한국 국적을 부여했고, 라건아는 바로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됐다. 1990년대 러시아 출신으로 골키퍼로 큰 활약을 했던 발레리 사리체프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잘 막는다는 뜻이 내포된 ‘신의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본관을 구리로 해 구리 신씨의 시조가 됐다. 라티노프 데니스라는 성남 구단 축구 선수는 ‘이성남’으로 개명했고, 대만 국적이었던 스케이팅 선수 공상정은 한국 국적으로 2014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반대 사례도 있다. 안현수는 러시아로 귀화한 후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4년 전 소치 동계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서 한국 체육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독립협회 창설의 중심인물이었던 서재필은 1884년 갑신정변 때 망명 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서재필은 귀국 후 미국 시민으로 행동하며 미국명인 ‘필립 제이손’이나, 이를 한국명으로 표기한 ‘피재손’을 사용했다.
고려 광종 때인 958년 과거시험을 처음 실시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은 중국 출신의 쌍기였다. ‘고려사’ 쌍기 열전에는 ‘대답을 잘해 광종이 그 재주를 아끼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광종은 관직과 토지를 하사해 고려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고려 고종 때는 베트남 ‘리’ 왕조 6대 황제의 왕자인 ‘리 롱 뜨엉’이 귀화 후 ‘이용상’(李龍祥)이 돼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다. 이용상은 1226년 베트남에 ‘쩐’ 왕조가 세워져 ‘리’ 왕조의 왕족을 살해하자 그 화를 피해 탈출했다. 바다에 표류한 후 극적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이었다. 고종은 이용상에게 땅을 주고 ‘화산군’으로 봉해 고려 정착을 도왔다. 1995년 화산 이씨 후손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는 베트남 정부의 큰 환대를 받기도 했는데, 화산 이씨의 사례는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증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말 이성계를 도와 1380년 황산대첩에서 큰 공을 세우고, 조선 건국 후 일등공신에 오른 이지란(李芝蘭)은 원래 여진족이었다. 어릴 때 이름은 ‘쿠란투란티무르’로 ‘쿠란’은 성씨, ‘투란(豆蘭)’은 이름이었다. 고려 공민왕 때인 1371년 이성계의 휘하로 투항, 귀화 후 이씨 성을 하사 받았다. 함경도 북청에 거주해 청해(북청의 다른 이름) 이씨의 시조가 된 것이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선봉장으로 출전했던 사야가(沙也加)는 조선에 투항한 후, ‘충성스럽고 착하다’는 의미로 조선인 ‘김충선(金忠善)’이 됐다.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전공을 쌓았으며, 만년에는 경상도 달성군 녹촌(鹿村)에서 거주했다. 목사 장춘점의 딸과 혼인해 조선에 동화된 생활을 했는데, 현재 이곳에는 그의 후손이 살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김충선처럼 조선에 투항한 일본군을 ‘항왜(降倭)’라 칭했는데, 항왜 중에는 조선에서 대우를 잘해주자 귀화한 인물도 다수 생겨났다.
일본명 ‘요여문(要汝文)’도 그러한 경우로 귀화 후 ‘여여문(呂汝文)’이 됐다. 여여문은 1598년 왜군의 복장을 하고, 경주 진공 작전에서 정탐 임무를 수행하다가 전사했고, 조정에서는 그 공을 평가해 상을 내렸다. 1627년(인조 5)에는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조선명 박연·朴淵)가 제주도에 표류했다. 벨테브레는 한양으로 압송된 후 훈련도감에서 총포 제작에 종사했으며, 1653년 하멜 일행이 표류하자 통역 임무를 맡았다. 조선인과 혼인해 1남 1녀를 두는 등 완전히 조선인이 됐으나 조선인 후손에 대한 기록은 없다. 1991년에는 네덜란드인 후손이 선조인 벨테브레의 자취를 찾아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국인으로 한국에 정착한 후 한국 국적을 취득했던 귀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 사례는 시대별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이 다문화와 개방의 시대로 나아가는 만큼 귀화인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귀화인이 우리 역사의 일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