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참사 속 밀양의 자긍심 지킨 10인의 의인

11만 경남 밀양시민의 애도 속에 3일 세종병원 화재참사 희생자 40명에 대한 합동위령제를 끝으로 밀양문화체육관과 경남도청에 설치됐던 합동분향소 두 곳이 문을 닫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합동위령제가 거행된 이날 또 한 명의 희생자가 추가로 발생, 총 사망자가 41명으로 늘어나 역대 최악의 화재참사로 기록된 가운데, 참사 속에서도 밀양의 자긍심을 지킨 10인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먼저 의사자 선정이 추진 중인 의료진 3인이다. 사고 당일 당직근무를 서다 변을 당한 민현식(59·행복한병원 정형외과 과장)씨는 세종병원 1층에서 마지막까지 환자를 대피시키다 숨진 것으로 알려졌고, 책임간호사 김점자(40)씨와 의료보조인인 간호조무사 김라희(37)씨는 2층에서 각 방마다 뛰어다니며 환자들에게 대피하라고 고함을 친 뒤 혼자 거동하지 못하는 환자 4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정전되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지 못하면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경남도는 이들 3인에 대한 ‘의사자 선정’을 행정안전부를 통해 보건복지부에 구두로 전달한 상태다. 밀양시도 추모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조만간 유족 및 관계기관들과 협의를 거쳐 신청서 작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3일 열린 합동위령제에서 유가족 대표로 나선 김승환 씨도 인사말을 통해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세종병원 의료진 3명을 의사자로 지정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김씨는 “당직의사 민씨, 책임간호사 김씨, 간호조무사 김씨는 환자를 구해야 한다는 책무를 다하려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생명을 걸고 환자를 대피시키다 목숨을 잃었다”며 “그분들의 살신성인 정신이 존중되도록 보건복지부와 밀양시에 의사자 선정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삿짐을 올리는 사다리차를 몰고 가 10여명을 구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장모(88)는 구하지 못한 정동하(57)씨도 의인 중 한 명이다.

정씨는 사고 당일 오전 7시 36분쯤 처제로부터 장모가 입원한 세종병원에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사다리차를 몰고 달려가 5층으로 25m짜리 사다리를 올려 10여명을 구했으나 그 사이 3층에 입원해 있던 장모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정씨는 자책감에 고개를 떨구었다.

세종병원 안에 있는 장례식장 관계자 3명도 의인에서 빼놓을 수 없다. 세종장례식장 정봉두 실장과 김성율 부장, 송영조 과장은 당시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해 영업을 준비하던 중 “불이야…” 고함소리를 듣고 1층 응급실 방향으로 달려가 소화기를 있는 대로 분사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불길이 너무 거세 소화기로 끌 단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때마침 소방차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관들이 도착 소방호스를 내리는 것을 본 순간, 이들은 본관과 붙어 있는 세종요양병원 3층으로 달려가 90여명을 구조했다.

특히 송 과장은 구조에 욕심을 내다 자신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 유독가스를 세게 한 모금 마신 것이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행히 엘리베이터 맞은 편에 비상용 방독면과 산소호흡기가 있다는 것을 평소 숙지하고 있던 그는 그 곳까지 필사적으로 기어가 호흡기를 꺼내 머리에 뒤집어 쓴 뒤 천신만고 끝에 2층에서 탈출했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연기와 비명이 난무하며,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가운데 4층 병실에서는 간병사 류연금씨(67)가 옥외 피난계단을 20여차례 오르내리며 환자들을 아래로 내려보냈다. 이 구출과정에서 본인도 상당한 상처를 입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요양보호사 이모씨(58)도 4층 병실에서 치매 환자 16명의 아침 식사를 돕던 중 환자 전원을 건물 밖으로 무사히 대피시켰다. 이씨는 당시 환자를 혼자 대피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 4층에 환자들이 갇혀 있는 사실을 소방대원에게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소방대원들이 도착하자 이씨는 치매 환자들을 일일이 휠체어에 태우는 등 신속하게 환자를 대피시킬 수 있도록 도왔다.

참사 현장에서 살신성인한 의료진과 직원 등이 있었다면, 끼니도 거른 채 사고현장을 수습하던 관계자들에게 장사하기 위해 숙성시켜 놓은 소고기 스테이크 300인분을 따끈하게 구워 무료 제공한 푸드트럭 소사장 김준석(39)씨 부부는 열번째 의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수많은 네티즌들은 화재사고 당일 혈액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둘째 아들(9·초등 2년)을 데리고 예약진료차 서울강남성모병원을 찼았던 김씨가 밀양으로 돌아오자마자 푸드트럭을 가동, 이틀에 걸쳐 스테이크를 제공했다는 자원봉사 보도에 ‘둘째 아들의 병이 속히 완쾌하길 기원한다. 너무 고맙다…’는 반응을 보이며 부부를 극찬했다.

밀양=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