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만에 자리 뜬 펜스 ‘김영남 패싱’… 北·美 대화 선긋기

용평리조트서 열린 개회식 리셉션/지각 입장 펜스, 일부 인사와만 손잡아/ 金 상임위원장 ‘자연스러운 만남’ 무산/“대북제재 균열 조짐 불편함 표출” 분석/ 아베는 金과 악수하고 이야기도 나눠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장에서 성사될 것으로 예상됐던 북·미 양국의 정상급 인사 간 대면 접촉이 불발됐다.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외면한 채 5분 만에 리셉션장을 빠져나가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방한한 김 상임위원장, 펜스 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한정(韓正)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한 외국 정상급 인사와 배우자 등 국내외 주요 인사 200명을 초청해 강원도 평창 용평리조트 블리스힐스테이에서 리셉션을 열었다. 김 상임위원장은 오후 5시34분 일찌감치 행사장에 도착해 문 대통령 부부와 악수를 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환영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리조트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사전 리셉션에서 헤드테이블에 앉아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리셉션 헤드테이블에 초청받았지만 행사장에 늦게 참석했고 5분 만에 자리를 떴다.
평창=청와대사진기자단
이날 리셉션장 헤드테이블에는 행사 직전까지 펜스 부통령 부부를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어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인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의 정상급 인사들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출될 것으로 점쳐졌다. 북·미가 올림픽 참가 전까지 서로를 향해 “만날 생각이 없다”고 으르렁거리긴 했지만, 전날 펜스 부통령이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형태의 조우가 있을 수는 있다”며 접촉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리셉션 시작 예정시각인 6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10분 정도 기다리다 결국 이들이 없는 상태에서 본행사를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환영사를 마친 뒤 잠시 행사장을 빠져나가 뒤늦게 도착한 펜스 부통령, 아베 총리와 공동 기념촬영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 사람은 6시39분 나란히 리셉션장에 입장했으나, 펜스 부통령은 김 상임위원장을 제외한 일부 인사들과 악수를 한 뒤 6시44분 바로 퇴장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의 대변인인 알리사 파라는 “펜스 부통령이 여러 테이블의 인사들과 환담을 나눴으나 북한 대표단장과는 마주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근 남북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압박 대열이 흔들릴 가능성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북한 여행 중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난 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친 프레드 웜비어와 함께 이날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를 찾아 북한을 ‘감옥국가’라고 비난한 직후 북한 측 고위인사와 만찬을 함께 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출입기자들에게 공지를 보내 “펜스 부통령은 미국 선수단과 오후 6시30분쯤 저녁 약속이 돼 있었다”며 “포토세션에 참석한 뒤 바로 빠질 예정이었으나 문 대통령이 ‘친구들은 보고 가시라’고 해서 리셉션장에 잠시 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판까지 펜스 부통령 부부 자리가 배치돼 있었던 것과 관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리 측이 만찬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혀 최종 순간까지 좌석을 준비한 것”이라며 “그러나 행사 직전 안 온다는 최종 통보를 받고 자리를 치웠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김 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고 윤 수석은 전했다. 윤 수석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옆자리에 앉은 김 위원장과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며 “구테흐스 총장이 ‘평양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음식이 맛있었다. 건강에 좋다는 인삼을 가져다 부친께 드린 적이 있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조선 음식이 건강식이라 유럽 사람들에게 잘 맞는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