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불굴의 투지에 아낌없는 박수를

남·북, 한반도 평화 위해 올림픽을 / 매개체로 삼는 건 의미가 있지만 / 선수들이 4년간 쏟은 땀방울이 / 정치의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돼 스포츠는 늘 감동이다.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내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낸 선수들의 스토리는 가장 잘 다듬어진 한편의 드라마보다 진한 울림을 준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부상투혼이다.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이 메이저대회 호주오픈 4강 신화를 쓰고 경기 도중 기권했지만 물집과 멍이 잔뜩 든 그의 발은 투혼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많은 선수가 감동의 스토리를 써내려 가고 있다.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긴 남자 쇼트트랙의 임효준(22)은 평생 부상과 사투했다. 수영선수를 하다 초2때 고막이 터져 쇼트트랙으로 전향했지만 중1때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고2때는 발목이 부러졌고 허리 골절, 손목 부상, 발목 인대 파열 등으로 모두 7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이쯤 되면 웬만한 선수들은 운동을 포기한다. 임효준도 “쇼트트랙 하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선수들이 평생 꿈에 그리는 올림픽 무대를 밟기 위해 매번 오뚝이처럼 일어섰고 결국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지난 12일 피겨 단체전에서 ‘동계올림픽의 꽃’ 여자 싱글의 프리스타일에 출전한 캐나다의 가브리엘 데일먼(20)은 한때 ‘왕따소녀’로 불릴 정도로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난독증과 천식에 시달렸고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되기에는 너무 뚱뚱하다는 주변의 손가락질에 거식증까지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로 온갖 편견을 떨쳤다. 지난해 피겨 그랑프리 3차대회 쇼트 1위에 오르며 이름을 날린 그는 이날 3위를 차지하며 캐나다의 단체전 금메달을 이끌었다. 그는 어려웠던 지난날들을 떠올린 듯 경기 뒤 인스타그램과 인터뷰에서 “지난 4년간 이 팀에 들어오기 위해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내가 꿈꿨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알파인스키 미국 대표 린지 본(34)이 ‘스키 여제’에 오르는 길도 매우 험난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을 앞두고 중상을 당했고 2010년 밴쿠버올림픽 직전 오른쪽 정강이 부상을 당했지만 활강에서 우승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을 코앞에 두고는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결국 출전하지 못했다. 오른쪽 무릎과 팔꿈치에 기다란 수술자국을 지닌 그는 지금도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린다. 그러나 그는 지난 4일 월드컵에서 알파인스키 여자부 최다인 통산 81승을 세우며 평창에 왔다. 스노보드의 ‘살아 있는 전설’ 숀 화이트(32·미국)는 지난해 10월 훈련 도중 추락해 얼굴을 무려 62바늘이나 꿰맸다. 이 때문에 국가대표 탈락 위기까지 몰렸지만 월드컵에서 100점 만점을 기록하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우승하며 평창행을 확정했다.

최현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몸의 상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피드스케이팅 노선영(29)은 2년 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쇼트트랙 대표 남동생 진규를 가슴에 묻고 지난 12일 여자 1500m를 뛰었다. 그는 협회의 부실한 행정 탓에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극적으로 구제되는 과정에서 큰 상처도 받았다. 그는 27명 중 14위에 머물렀지만 경기 뒤 “동생과의 약속을 지켜 마음이 이제 후련하다”고 회한을 털어놓았다. 최다빈(18)은 지난해 6월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섰고 지난 11일 피겨 단체전 싱글에서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은 88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이다. 그런데 주객이 좀 전도된 모양새다. 선수들의 감동 스토리보다 북한 고위층, 예술단, 응원단의 방남,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얘기가 더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평양올림픽’이라는 비아냥도 나올까.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매개체로 삼는 남과 북의 노력은 큰 의미가 있다. 사실 올림픽의 가장 중요한 정신도 스포츠를 통한 세계평화 실현이다. 하지만 올림픽의 주인공은 선수들이지 않는가. 그들이 4년 동안 한 곳만 바라보고 쏟은 땀이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뛰는 그들의 투혼에 더욱 힘찬 박수를 보내야 할 때다.

최현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