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2-19 06:00:00
기사수정 2018-02-18 23: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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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상화 선수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장내 아나운서가 참가 선수를 한 명씩 소개할 때 팬들은 저마다 가져온 국기를 펼쳐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29번째, 대한민국 이상화(29·스포츠토토)차례가 되자 가장 큰 함성이 강릉 오벌을 뒤덮었다. 풍파를 이겨내고 다시 핀 꽃, 이상화는 3연패 꿈은 좌절됐지만 값진 은메달로 평창동계올림픽을 마무리했다.
이상화는 18일 강원도 강릉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37초33을 기록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이상화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2014년 소치올림픽에 이어 올림픽 3연패를 도전했지만 아쉽게 달성하지 못했다.
이상화는 지난 6일 강릉선수촌에 입촌한 이래 이틀에 한 번꼴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다. 사진과 함께 ‘긴장을 즐기자’, ‘오천만 등에 업고’, ‘내 경기장에서 환하게 웃자’ 등 글귀를 남겼다. 초조한 마음을 팬 응원으로 해소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이날 이상화는 경기 시작 5시간 전부터 경기장에 나왔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가볍게 뛰면서 몸을 풀었다. 강릉 오벌은 태극기가 넘실댔다. 장내 아나운서가 이상화를 소개하자 관중의 함성은 오벌을 뒤덮었다. 이상화에 앞서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32·일본)가 달렸다. 고다이라는 36초94, 4년 전 이상화가 세운 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상화는 헤드셋을 끼고 일부러 듣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자신에 집중했다. 이상화는 “원래 경기 준비하기 전에 스타트 라인에서 준비하는데, 그거 안 보려고 마지막 코너에 가 있었다. 함성 커서 초도 못 들었다. 그거 안 듣는게 목표. 그거 들으면 몸이 굳는다”고 말했다.
드디어 이상화 차례가 됐다.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처음 100m에서 고다이라를 앞섰다. 200m까지도 이상화는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이상화는 “저도 빠르다는 걸 느꼈고 마지막 코너까지도 온몸으로 느꼈다”며 “과거 세계신기록 세울 때 느낌이 났다”고 설명했다.
홈 팬의 열광과 함께 거침없이 내달리던 이상화는 세번째 곡선에서 살짝 삐끗했다. 이상화는 “너무 빨리 달려서 마지막 코너에서 실수했다. 하지만 이미 끝났다. 후회는 없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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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 선수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며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소치올림픽 금메달 이후 이상화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이 종목에서 장훙(30·중국)이 치고 올라와 이상화의 아성을 위협했다. 장훙이 지나가더니 이번에는 고다이라 나오(32·일본)가 최강자로 급부상했다.
이 때문에 올림픽을 앞두고 이상화의 3연패를 예측하는 전문가는 보기 드물었다. 라이벌인 고다이라가 상승세인 반면 이상화는 주춤한 탓이다. 이상화는 2017∼2018시즌 내내 고다이라를 넘지 못했다. 8년 전 밴쿠버올림픽과 4년 전 소치올림픽에서 이상화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한 것과 상반된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도 고다이라를 이기지 못했지만 이상화는 최선을 다했다.
이상화는 할만큼 했는데 고다이라가 더 잘탔다. 이상화는 끝나고 오열했다. 고다이라도 함께 눈물 흘렸다. 이상화는 “이제 끝났구나, 드디어 끝났구나 안도감이 들었다”며 “금메달을 못 따서 슬픈 게 아니다. 3연패 부담이 있었는데 할 수 있다고 계속 되뇌었다. 경기를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일장기를 등에 업은 고다이라와 태극기를 든 이상화는 손을 맞잡고 함께 세리머니를 했다. 서로 껴안고 격려했다. 이상화는 “중학교 때부터 지금 이자리 설 때까지 함께했다”며 “나오가 저한테 존경한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강릉=최형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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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릉=남정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