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호무역 공세에도 '경제외교' 실종…손놓고 당하는 한국

정부 늑장 대응에 비판 고조 / 트럼프, 철강 보호위해 관세폭탄 / 주요 우방국 중 한국만 포함돼 / 산업부 “美와 꾸준히 접촉” 해명 / 전문가 “투자 유치 땐 감독 필요” / 한국 GM사태도 결국 화 키워 / “세탁기 세이프가드 풀어 달라” / 文 대통령, 펜스 방한 때 요청
미국발 통상 압력이 날로 거세지는 가운데 그동안 정부의 경제외교가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시종일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휘둘린 채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뿐 아니라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국내산업 전반에 거센 불길이 옮겨붙었다는 지적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이 무역확장법까지 들어 53%라는 초고율 관세의 철강 수입규제를 권고한 것은 무역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줄 만한 사건이었다. 이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등 상식을 벗어난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다. 한국무역협회 통상협력실 제현정 박사는 “전문가들도 설마 했을 정도”라며 “미국 외 시장으로 다변화하지 못하는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미국의 통상 압박과 관련해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조치의 경우 초고율 관세 부과 대상 12개국에 미국의 주요 우방국 중 우리나라만 포함된 점, 당초 업계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50%대의 관세가 언급된 점 등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피해는 산업계가 떠안을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산업부 강성천 통상차관보가 WTO 제소 적극 검토를 비롯해 그동안 정부의 활동 경과와 대응방안 등을 밝혔지만 지금까지 나온 내용과 큰 차이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날 강 차관보는 “지난해 4월 미국 상무부의 철강 수입 영향 조사가 시작된 후 지속적으로 미국과 접촉해 대응해 왔음에도 이 같은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고 밝혔다. 미국이 ‘자국 철강산업 가동률 80%’라는 뚜렷한 목표를 위해 시뮬레이션을 거쳐 이 같은 수입규제안을 낸 것이어서 우리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미 상무부 윌버 로스 장관이 언급한 네 가지 기준인 △최근 철강 설비증가율 △완제품 수입 여부 △중국산 철강 수입비중 △대미수출 증가율 등에 우리나라가 부합한다는 것이다. 강 차관보는 이어 “특히 우리가 중국산 철강 수입 비중이 높다는 점이 주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중국산 철강은 주로 내수시장용이므로 대미 수출 물량과 분리된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정부가 중국산 철강 수입 문제 등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지난주 결국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한 한국GM 사태도 정부가 늑장 대응으로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한 통상전문가는 “한국GM 사태는 외국인 투자가 가진 양면의 칼날이 잘 드러난 사례”라며 “투자를 유치해서 일자리 창출을 하면 잘했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상태에서는 지역경제와 일자리에 모두 영향을 주는 민감한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만큼 정밀한 관리감독과 대비가 따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전문가는 “이미 현재 상황에서는 정부가 GM의 부실을 메워주기도 쉽지 않은 딜레마에 처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통상공세가 잦아들지 않을 기세라는 점이다. 미국은 철강에 앞서 지난달 한국산 세탁기·태양광 모듈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바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특허 침해를 주장하고 있는 미국 반도체 업계도 공세에 돌입했다. 지난주 한국, 중국, 일본을 직접 겨냥해 ‘호혜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도 불씨로 남아 있다.

정지혜·박성준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