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한마디 "괜찮니?"]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여러 연구에서 경제, 물질수준 등과 같은 객관적인 지표는 국제적으로 상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아동 스스로가 느끼는 행복감은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아동들은 가장 밝고 즐겁게 살아가야 할 나이에 가장 어둡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우리나라 아동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고, 우울증과 자살률도 단연 세계 최고수준이다.

더 심각한 것은 가정, 사회,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확한 통계가 없기 때문에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부모 또는 보호자가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하는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부모인 내가 죽으면 홀로 살아갈 자녀가 겪을 어려움은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 부부간의 치정문제에 따른 복수심, 자녀의 장애, 부모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자녀살해 후 자살사건이 발생한다.

일반적인 인식은 물론 언론 매체에서도 자녀를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에 대해 ‘동반자살’, ‘일가족 자살’이라 규정한다. 인지적 판단능력이 부족한 자녀에게 가족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며 자살을 종용하는 행위를 동반자살로 볼 수 있는 것인가? 어린 자녀가 부모의 극단적인 결정에 동의했다고 해서 이를 자발적 동의로 생각해도 되는 것인가? 이것은 절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며,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뒤틀린 문화의 극단적 표현이다. 사회가 아이의 양육을 전적으로 부모에게만 맡기고, 아무리 부모가 ‘나쁜 양육자’여도 생물학적 부모가 남보다 낫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극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를 아동살해, 자녀살해 등으로 분류해 살인행위로 정의한다. 이러한 범죄행위를 자살로 축소하거나 사건의 본질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부모라고 하더라도 자녀의 생명권을 경시하거나 침해할 권리는 없다. 이는 명백한 살인과 아동 인권 침해 행위를 온정의 대상으로 만들고, 부모가 자기 뜻대로 자녀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릴 위험을 지니고 있다.

자녀살해 후 자살은 ‘자살’과 ‘살해’의 행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녀살해 후 자살도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간주하기 어렵다. 자녀살해 후 자살은 경제문제, 정신적(정신과적) 원인, 가정문제 등 상호복합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비난, 처벌 강화만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먼저 언론 매체는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은연중에 유포하는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은 사건의 초점을 '오죽했으면'이라는 반응처럼 부모의 안타까운 심정을 동정하도록 만드는데 그친다. 자살로 부모를 잃은 아이의 경우에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철저한 치료나 돌봄서비스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면 해체된 가족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역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하는 것도 자살과 자녀살해를 예방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경찰청, 통계청 등 국내 어느 기관에서도 자녀살해 후 자살의 통계적 수치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안은 현황파악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 확인, 세밀한 실태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원인의 진단, 자원의 연계, 사후관리 등 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체계화된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자녀살해 후 자살은 부모자살과 자녀살해가 동시에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이다.

피해자녀의 권리 구제 방안, 아동학대 및 가정폭력 예방책과 더불어 자살에 대한 서비스 제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이를 해결할 수 있다. 더 이상 자녀가 부모의 손에 살해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사라지길 바란다.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사회복지학과) 교수

본 칼럼은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세계일보가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해 진행하는 연재형 기고문입니다.

<세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