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2-23 13:30:00
기사수정 2018-02-23 15:56:53
남북 대화 분위기 형성…핵 실험 못 하는 北·군사 압박 카드 날린 美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전개되고 있는 외교전의 금메달은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의 ‘21세기연구프로젝트’(PS21) 국장인 피터 앱스(Peter Apps)는 22일(현지시간) ‘문 대통령의 올림픽 책략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덫에 걸렸다’고 분석했다. 그는 “진정한 전략적 승자는 한국 정부이고, 한국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주도면밀하게 외교 지형을 재편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 차단
남북한은 화해를 얘기하면서도 서로 타협하거나 한반도 통일로 이어질 파멸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앱스 국장이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이 필사적으로 하려는 것은 일방적으로 북한의 핵 시설을 타격하려는 미국의 위협을 제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진전됨으로써 미국이 궁지에 빠진 것은 자명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트럼프 정부가 올해 북한에 군사적 위협을 가중해 나가면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진전시키면 미국은 실제로 군사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는 북한의 우려를 증폭시키려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남북한 간 올림픽 화해와 한국의 요구로 인해 미국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올림픽 화해가 한반도에서 게임 체인저는 결코 아니고, 근본적인 충돌 위험 요소가 상존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평창 올림픽을 통해 지속해서 고조돼온 긴장의 사이클이 무너졌고, 긴박했던 전쟁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앱스 국장이 강조했다. 그는 “남북대화가 진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미국은 정당화할 수 없는 침략 국가가 되고, 평화가 가능한 지역에서 대참사를 조장하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의 선택
북한의 김 위원장은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 그는 핵무기 개발을 계속해서 핵탄두가 장착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정권 안보를 유지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보다 강력한 미사일과 핵탄두를 만들려면 추가로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앱스 국장은 “만약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면 남북대화가 무산되고, 미국이 제한적인 대북 공격을 감행하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면 최소한 국제 사회가 고강도 대북 제재에 나설 것이고, 중국도 이에 동참할 것이라고 그가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경제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되고, 중국의 대북 지원이 감소하면 김정은 정권의 존립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그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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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책기획위원회 오찬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
◆문재인의 위기관리
앱스 국장은 “김정은이 궁지에 빠져 있는 상황은 문 대통령이 노리는 목적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잔혹한 김씨 왕조에 애정이 있을 리 없지만, 참사 없이 그를 몰아낼 수가 없다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현재 상황을 최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평창 올림픽을 일시적인 데탕트 속에서 치른 것만으로도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앱스 국장이 강조했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으면 사이버 또는 게릴라 공격으로 올림픽을 훼방하려 할 수 있고, 미사일이나 탄두 실험을 통해 올림픽 분위기를 망쳐 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추가 도발과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막거나 최소한 이를 늦출 수 있는 ‘불충분하지만 실질적인’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