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의小窓多明] “그래, 백남준이었구나”

백남준이 희구한 인간 위한 기술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통해 구현
그가 보여준 예지력·상상력 살려
21세기 인류에 빛 만들어 선사를
“아니 이런 정도였나?” 지난주 끝난 평창올림픽의 폐막식을 본 사람들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개막식장에서 보인 휘황한 전자 불꽃쇼, 깊이 있는 전설과 신화의 재현 영상 속에 드러난 우리 민족의 인간 존중 사상·미의식, 끊이지 않고 무궁동(無窮動)처럼 이어지는 신명의 활동사진, 이렇게 펼쳐진 거대한 개막과 폐막 쇼는 우리 국민을 넘어 세계인을 놀라게 한 대박이었다. 둥글게 만들어진 한가운데의 무대는 때로는 한 대, 때로는 수백수천 대의 TV 수상기가 눕고 세워지고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시시각각 헤아릴 수 없고 미처 다 느낄 수도 없는 영상과 소리와 체험 속으로 인간의 감각을 무한대로 확장했다. 개·폐회식을 지켜본 필자는 이렇게 소리 질렀다. “그래 이 모든 것이 백남준이잖아!”

올림픽 개막과 폐막 행사가 비밀에 가려져 있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준비되고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것은 바로 백남준이 영상·음악·소리, 그리고 시공을 통해 구현하려 했던 지구인 모두의 흥과 신명, 바로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였다. 거기에는 노래와 춤이라면, 아득한 상고시대부터 누구 어느 민족에게도 지지 않았던 한국인의 신명의 리듬이 넘치고 있었고, 색동저고리를 즐겨 입던 한국인의 화려한 색채감이 있었고, 어느 순간이라도 지루함을 박차고 뛰어나가 뭔가 일을 만들어내는 한국인의 맥박과 박력이 있었다. 그야말로 일찍이 1960년대에 앞으로의 세상은 전기매체에 의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인간 감각의 엄청난 확장을 볼 것이라는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의 예언이 한국의 평창이라는 땅과 공간에서 한국인에 의해 실현된 것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백남준은 세계적인 비디오예술가였다. 그런데 무엇이 세계적이고, 왜 어떻게 그가 당대를 흔들어 놓았던가. 백남준은 음악가였고 행위음악으로 시작했지만 매클루언의 예언적인 책을 통해 앞으로 전기·전자기술이 인류를 지배할 것임을 일찍이 간파하고 그 과학기술을 인류를 위한 예술수단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독일에서 고물 TV를 구해 전기와 자석으로 비뚤어진 영상을 처음 만들었고, 그러한 영상을 조각과 해프닝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비디오 예술을 창시했고,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384대의 컬러TV를 눕혀 놓고 거대한 삼색기를 만드는 등 TV화면을 통해 예술과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1984년에는 단순한 통신수단인 인공위성으로 전 세계 예술가를 불러모아 지구촌 축제를 처음 성공시킨 데 이어, 1986년과 1988년 세계인들의 스포츠축제에서 위성을 통한 소통과 화합의 예술적 한마당을 만들어 전 세계인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세계평화의 터를 닦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자기술이 앞으로 무한대의 정보를 제공할 것임을 알고 오늘날 인터넷을 위한 정보통신망의 구축을 맨 처음 외쳤고, 우리의 삶이 들고 다니는 무선전화, 곧 휴대폰시대가 될 것임을 예견했다. 그러고는 레이저로 달려가 레이저기술을 이용해 어느 한정된 평면이나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 어디에서나 예술을 펼치고 즐길 수 있음을 열어 보여주었다. 그것이 그의 예지를 알게 된 많은 기술인, 예술인, 예능인의 노력에 의해 마침내 21세기에 지금까지의 모든 감각세계를 넘는 초절정의 예술을 감상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폐막식 무대 한가운데에 펼져진 많은 사각형 영상의 집합을 보면서 나는 백남준이 1982년 파리에서 시도한 ‘삼색비디오’의 재현을 보았고, 바닥에서부터 공중에 이르기까지 누웠다 세워졌다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영상, 드론을 타고 하늘에 거대한 형상을 만들고 그것으로 평화의 오륜을 만드는 절묘한 기술에서 백남준의 레이저 쇼를 보았다. 이러한 기술은 우리가 만든 것도 있고 밖에서 들여온 것도 있지만,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고 꾸민 것은 우리 한국인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1984년 이후 백남준을 만나고, 그의 예술을 접하고, 그의 이상을 곳곳에서 배우고 확인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다. 백남준이라는 한 한국인이 그처럼 희구했던 인간을 위한 기술의 활용, 소통과 평화를 위한 예술의 역할이 평창이라는 공간에서 후손인 한국의 젊은이들에 의해 구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백남준은 비디오 예술을 하는 미술가나 조각가가 아니라 시공간예술가이자 전자예술가이며, 소통의 예술가였고, 미래를 위한 예지자 선지자였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이 2012년 12월 백남준의 전시회를 열면서 내건 제목 그대로 그는 ‘지구의 예언자’였다.

그런데도 큰 아쉬움이 있다면 그러한 백남준을 폐막식 때 홀로그램으로 한 번이라도 비춰 주었다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휘황한 전자예술의 잔치의 창시자가 한국인 백남준이었음을 세계인들이 자연스럽게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올림픽 전시장 몇 곳에 그의 비디오 작품을 진열하는 것에 그쳐 이 세계적인 대잔치의 숨은 주재자였던 백남준을 널리 알리지 못하고 말았다.

평창올림픽은 대성공으로 끝났다. 앞으로 인류의 역사는 또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할 것인가. 그 어떤 상황이 돼도 미래를 보는 뛰어난 예지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내다본 백남준의 공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후손들은 백남준을 더욱 알려야 하며,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예지력·영감과·상상력을 살려 21세기에 인류에게 더욱 찬연한 빛을 만들어 선사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