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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퇴직연금 연금수령 유도위해 세제체계 개편 필요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산업화 이후 부양 공동체 역할을 해오던 대가족의 해체로 노인부양문제가 대두되자 각국의 정부는 공적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지속적인 소득 증가와 의료기술의 발달로 노인인구 비중이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자 정부는 사회연대에 기반을 둔 공적연금의 한계를 예측하고 사적연금의 활성화를 통해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강화해 왔다. 

우리나라 역시 국민연금의 법정소득대체율을 70%에서 40%로 인하하고 수급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고령화로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이 여전히 취약하다. 이에 우리나라 역시 공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기능을 보완하고자 2005년 12월에는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고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에 대한 세제혜택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적연금이 '연금제도'라기 보다는 단순한 '저축상품'으로 전락해 있다는 점이다.

장수리스크(longevity risk)는 기대수명(life expectancy)보다 오래 생존함에 따라 개별 경제주체들이 직면하는 경제적 부담으로 정의될 수 있다. 1960~2013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기대수명은 68세에서 80.2세로 12.2년 증가한 반면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같은 기간 52.4세에서 81.8세로 무려 29.4년 증가했다. 지금도 실제 수명이 통계청의 예측치를 매년 상회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장수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수리스크를 관리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연금을 활용해 불확실한 사망 시점까지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다. 2017년 8월을 기준으로 국민연금 수령자는 430만 명 정도인데, 평균 수령액이 35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장수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사적연금에서 연금수령을 유인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적연금 중에서도 퇴직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 개인연금제도는 도입 취지가 '여유로운 노후생활 보장'으로 가입이 임의인 반면 퇴직연금제도는 도입 취지가 '표준적인 노후생활 보장'으로 가입이 강제된 준공적연금이다. 

국민연금과 달리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은 적립금을 '일시금'과 '연금' 중 선택할 수 있는데 태생적으로 개인의 자율을 존중해주어야 하는 개인연금제도에서는 연금수령을 강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준공적연금이자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 제도적 완성도가 우월한 퇴직연금제도를 통해 연금수령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2016년을 기준으로 퇴직연금 적립금(퇴직급여)을 연금으로 수령하는 사람은 1.6%에 불과하다. 즉 은퇴하는 근로자 중 98.4%가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는데, 대부분 퇴직급여를 노후자금이 아닌 생활자금으로 조기에 소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도록 유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일시금과 연금 수령 간 세금부담의 차이를 확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일시금 수령 시 세금부담을 확대하고 연금수령에 대한 세금부담을 경감시키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2016년부터 적용해 연금수령의 활성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개정된 소득세법하에서도 20~30년 근무해 2억~3억 원의 퇴직급여를 적립했을 경우 두 수령방법 간 세율 차이가 최대 3.0%에서 최소 0.7%로 미미해 연금수령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두 수령방법 간 세금부담 차이가 작은 이유는 일시금 수령 시 제공되는 공제 혜택의 종류가 많고 금액도 크기 때문이다. 혹자는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가 연금수령에 대한 세제 혜택을 훨씬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급격한 인구 고령화를 고려했을 때 연금수령의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결국 우리나라 인구구조 그리고 미래의 정부재정을 고려 시 일시금 수령에 제공하는 공제혜택을 폐지하는 방법으로 두 수령방법 간 세금부담 차이를 확대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미국, 호주, 영국 등 주요국들은 일시금 수령을 허용은 하되 수령액에 대해 일반적인 소득세를 적용하고 있다. 결국 장기간 축적된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수령하면 금액이 크기 때문에 자연스레 최고 세율이 적용되며, 연금으로 수령하면 낮은 세율이 부과된다. 우리나라처럼 일시금 수령에 대한 공제혜택은 제공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시금 수령에 제공하였던 세제 혜택을 폐지할 경우 이해관계자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공했던 혜택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제공하지 않았어야 할 혜택을 폐지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시금 수령에 무리한 세제 혜택을 제공해 빈곤한 노인을 양산하기보다는 연금 수령을 통해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확보하고 장수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세계파이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