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3-07 19:24:57
기사수정 2018-03-07 19:24:57
③ 마음속에 분노 쌓인 10대 / 일상에서 어이없는 표출/“최근 1년간 스트레스 경험” 83%/ 부모 잔소리에… 친구 실수에도/ 그 순간 못 참고 폭력 등 극단행동/ 잔혹한 청소년범죄 이어지기도
‘열쇠’는 가정에 있다/ 힘들어해도 “오직 공부” 채찍 드는 / 부모들 양육 태도부터 달라져야/ 가정에서 정서 조절 교육 등 필요/ 행복감 끌어올릴 사회 노력도 시급
아동학대, 학교 폭력, 과도한 학습 부담 등 청소년의 안전을 위협하고 기를 못 펴게 하는 적폐가 즐비합니다. 청소년들의 문제는 곧 부모와 국가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하며 꿈을 심어주는 일이 시급합니다. ‘청소년 氣 살리자’ 시리즈는 청소년들의 육성을 있는 그대로 싣고 전문가들의 진단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발언대’가 되겠습니다.
#1 초등학교 때 우등생이었던 A(16)양은 중학교 진학 이후 성적이 급락하면서 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자존감은 떨어졌고 학교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찾은 게 바로 온라인 슈팅 게임. 게임에 몰두할수록 비루한 현실은 점점 잊혀졌다. A양은 게임에 빠져 어느 때부터 학교도 가지 않고 PC방만 들락날락했다. 물론 어머니와 실랑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게임을 말리는 어머니에게 이양은 고성을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졌다. 급기야 칼을 꺼내 “상관 말라”며 위협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 고등학생 B(18)군은 지난해 수업시간 도중 친구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친구가 자신의 교과서를 말도 하지 않고 가져갔다는 이유에서였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한 B군은 욕설과 함께 해당 친구를 눕힌 뒤 한동안 드잡이질을 벌였다. 주변에서 뜯어말렸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B군이었기에 그날의 격한 반응에 모두가 놀랐다. B군도 “사소한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쳇바퀴 같은 하루, 공부만 강요하는 부모, 불투명한 진로…. 이런 환경 속에서 쌓인 청소년들의 분노가 일상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화를 가라앉히는 게 익숙지 않은 청소년들이 속으로 삭이던 분노를 특정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표출하면서 폭력 등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느끼는 낮은 행복감을 끌어올리려는 사회의 노력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높은 스트레스에도 해소 방법 잘 몰라
청소년들이 겪는 높은 스트레스는 분노를 키우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7일 여성가족부의 ‘2017년 청소년 종합실태조사’(전국의 만 9∼24세 청소년 7676명 대상) 결과를 보면, ‘최근 1년간 스트레스를 가끔 또는 한두 번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83.7%로, 2014년(70.6%)에 비해 13.1%포인트 증가했다. 일상 중 스트레스를 느낀 적이 없는 청소년도 8.5%로, 2014년(10.8%)보다 적어졌다.
이 같은 배경에는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교육열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평균 네댓 개의 사교육을 받는 등 학창시절 내내 공부를 강요받는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따로 해소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3시간)보다 많은 주당 40∼60시간을 공부에 쏟고 있다. 우리나라 중학생들의 사교육 시간은 하루 평균 3.6시간으로, OECD 평균(0.6시간)보다 6배나 높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최모(46)씨는 “아이가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채찍질을 하는 부분이 있다”며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지’하면서도 청년실업 관련 뉴스들을 보면 그렇게 하기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핵가족화로 인해 가정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체득하기 어려워진 점이 화를 다스리는 데 서툴러진 이유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소년들이 화를 꾹 참거나 한 번에 폭발시키는 등 극단적인 방법밖에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귀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예전에는 형제가 많다 보니 어린 시절 양보하는 법 등을 배우기 쉬웠다”면서 “요즘에는 외동자녀가 많아 갈등을 조정하는 등의 사회화 과정을 겪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고 지적했다.
◆“폭력 등 청소년 범죄로 이어지기도”
일각에서는 최근 흉포해지는 청소년 범죄가 이런 분노들을 제때 해소하지 못해 생긴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6년 4859명이던 폭행·상해 소년범은 2016년에는 1만846명으로 10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학교폭력도 2014년 1만3268건, 2015년 1만2495건, 2016년 1만2805건 등 매년 1만건 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6월과 11월 발생한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 및 ‘대전 중학생 쇠파이프 폭행’ 사건과 지난 1월 일어난 ‘인천 여고생 집단폭행·성매매 사건’ 등은 청소년들의 분노가 어떻게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들이다.
경기도의 한 청소년상담센터 관계자는 “가정환경이 어렵거나 부모의 관심을 적게 받는 환경에 놓인 청소년일수록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며 “청소년들이 오히려 어른보다 더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성적이나 경제 수준보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을수록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민정 아주대 교수(상담심리학)는 “요즘 청소년들의 분노를 살펴보면 크게는 학업 스트레스가 원인이지만 개인적으로 살펴보면 가정불화나 부모의 양육태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화를 자각하고 표현하는 교육, 정서를 조절하는 교육, 적절히 쉬면서 화를 해소하는 훈련들이 가정에서부터 차근차근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창수·안승진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