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연임·채용비리' 부메랑…최흥식 금감원장 결국 사임

오전까지만해도 정면돌파 의지 / 정치·사회적 파장 확산에 부담감 / 일각 “채용비리 연루 흘려 흠집” / 금융권과 지배구조개선 충돌 / 금융감독기관 수장 권위 상처
12일 오후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의 사임은 갑작스러웠다. 이날 오전만 해도 최 원장은 정면돌파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특별검사단’을 구성해 자신을 비롯한 하나은행의 채용비리 의혹 전반에 대한 사실 규명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추천만 했을 뿐 채용과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는 결백 입증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최 원장은 이날 오전 ‘금감원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최근 하나은행의 채용비리에 본인이 연루됐다는 의혹 제기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2013년 하나금융지주 사장 재직 당시 특정인을 취업시키기 위해 하나은행 인사에 간여할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특별검사단 조사 결과 본인이 책임질 사안이 있으면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다.

정면돌파 의지는 오후 들어 사의 표명으로 돌변했다. 금융감독당국 수장의 권위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는 좌절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채용비리 혐의를 인정하는 게 아니더라도 의혹에 연루된 사실만으로도 금융감독당국 수장의 자리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거란 얘기다. 안 그래도 하나금융과의 대립과 갈등 여파로 금융감독원의 권위와 사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터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더 이상 금감원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치·사회적 파장이 커지는 것에도 적잖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비판성명이 잇따른 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날 ‘금감원장을 경질하라’는 글이 올라오는 등 비판 여론이 확산했다.

작년 말부터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3연임과 채용비리 등을 두고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금감원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지난 1월 금감원과 하나금융의 정면충돌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당시 금감원은 “특혜대출 등에 대한 검사가 진행 중이니 회장 선출 일정을 연기해 달라”고 구두와 서면으로 요청했지만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이를 무시하고 절차를 강행해 김 회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결정해버렸다. 최 원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그 사람들이 (금감원) 권위를 인정 안 하려는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최 원장의 채용비리 연루설도 이런 갈등의 연장선에서 불거졌다. 하나금융 내부에서 최 원장의 추천 사실을 흘려 채용비리 이슈를 만든 것으로 금융당국은 의심하고 있다. 최 원장이 하나은행에 지원한 친구 아들을 추천한 것은 당시 하나금융 관행으로는 ‘정상적’인 것이었음에도 이를 금감원장을 흠집 내는 데 활용했다는 것이다. 하나금융 측은 펄쩍 뛴다. 고위관계자는 지난 11일 “금감원장이 잘못되면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 텐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왜 하겠느냐”며 기획설을 일축했다.

이 같은 대립과 갈등의 프레임으로 보면 결과적으로 금감원장이 패배한 꼴이 된다. 금감원 내부의 기류는 험악하다. 금감원은 최 원장 사임에도 ‘특별검사단’을 가동해 시시비비를 가릴 태세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 원장이 물러났다고 검사를 중단하면 바터(거래)한 것밖에 더 되겠느냐”고 말했다. 주요 시중은행들의 채용비리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하나금융이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결과에 대해 금감원은 보다 엄격하게 책임을 물으려 할 것이다. 하나금융에 튈 ‘불똥’이 얼마나 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