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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칼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나

‘똑바로 가는 사람’ 흉보는 세상
‘백’과 ‘돈’만 아는 ‘그늘의 사회’
걸음 늦은 사람도 빠른 사람도
출발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곳곳에서 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계절이다. 대학의 첫 강의와 청년들의 미래계획, 고등학교 중학교 소년·소녀들의 첫 수업시간과 숨 가쁜 미래계획, 올해 처음 가는 초등학교 학생과 부모의 희망찬 미래계획 등 곳곳에서 아름다운 등불이 발갛게 마치 어떤 축제에서처럼 하늘로 오르는 시간, 초록이 움직거리기 시작하는 시각이다. 알래스카에서는 강에 막대기를 꽂아놓았다가 그것이 움직거리기 시작하는 날 온갖 풍선을 띄우고 봄을 맞는 축제를 한다지 않는가.

나도 오래전이지만 대학에 처음 가던 날, 고등학교에 처음 가던 날, 그리고 미래에 대해 숨 가쁘게 떨며 중학교에 가던 날을 기억한다. 대학에 처음 가던 날에는 30년 만의 안개가 낀 날로 학교로 올라가는 길이 안 보였었다. 앞사람의 머리만이 희미하게 둥둥 떠가고 있을 뿐이었다. 대학 4년을 민주화 데모와 조기방학으로 보낼 앞날을 예고한 안개였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대학에 가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남모르는 노력을 했던가.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 시인
그 시절엔 입시과목 중 체육이 있었다. 그중에도 달리기 과목이 있었다. 운동 성적이 시원치 않은 나는 열심히 ‘연구’한 결과 출발을 잘하면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으리라는 영특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상생활 가운데서 출발을 잘하는 연습으로 안성맞춤인 듯 보이는 ‘신호등 건너기’ 방법을 생각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켜지는 순간에 딱 맞춰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겐 그것이 그렇게 어려웠다. 남보다 일찍, 그러나 부정하지 않고 출발하는 법, 푸른 신호등이 켜지는 순간을 누구보다 빨리, 그러나 정확히 포착하는 법. 하지만 나는 늘 조금씩 늦었다.

그 후 사회에 나와서도 나는 신호등의 파란불이 켜지는 시각을 정확하게 맞추느라고 고심했다. 나의 출발은 늘 조금씩 늦으며 걸음도 빠르지 못하다는 것을.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의 턱에도 걸려 잘 넘어진다는 것을 순간순간 기억하면서. 그래서 사회에 나왔을 무렵 처음엔 먼저 출발선 앞으로 나오거나 푸른 신호등이 켜지기 전 출발하는 것을 생각도 못했었다. 그것은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다. 공평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정직하게 경쟁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쯤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다들 내 앞을 지나쳐 멀리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잰걸음으로 걸어도, 내 실력상 최고의 뜀박질을 하여도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노력을 안 해서 그래, 모든 게 내 탓이야.’ 나는 밤새워 자책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들은 걸음이 빨라서라기보다 어떤 방법으로든 일찍 출발하거나, 앞사람을 밀치며 뛰거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을 이길 것인가.

‘모로 가도 서울로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똑바로 가려고 하는’ 사람이 흉잡히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렇게 느려서야.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저 혼자 똑바로 가보라지. 세상이 알아주나’ 그런 말들이 늘 들려오곤 했다. 이 사회는 ‘등 뒤 그늘’이 중요한 사회였다. 속된 말로 ‘백’과 아니면 ‘돈’ 같은 것이 귀중한 사회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면서, 출발선을 지키면서 일하는 사람은 곧 묻혀버리는 그런 ‘그늘의 사회’였다.

올림픽에서의 달리기를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먼저 출발하면 실격되는 그 달리기를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떤 이유에서건 출발시각을 지키지 않는 선수는 꼭 나오게 마련이다. 핏속에 빨리 달리는 약을 넣은 사람도 꼭 나온다. 현실은 원래 그런 것인가. 그러다 보니 다음과 같은 말도 생긴 것인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물론 행복의 내용은 모두 다르리라만 출발선과 시각을 어기지 않아도 무엇인가 성취의 결과물을 얻는 사회적 토대에서야 진정한 행복은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모로 가도 서울로’의 구호가 불가능한 사회, 걸음이 늦은 사람도 좀 빠른 사람도 출발선, 또는 출발시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사회. 이 또한 바보 같은 말인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인가.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