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베이징보다 더 나빴던 공기질…'대기질 역전' 뭐가 문제였나

'숨막히는 아침'… 미세먼지 대응은 ‘뒷북’
서울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미세먼지 공습 나흘째인 26일 오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급기야 ‘미세먼지 발원지’인 중국 주요 도시보다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대기질이 급속도로 나빠진 지 사흘이 지나서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하는 등 정부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국립환경과학원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현재 서울의 미세먼지(PM2.5) 농도(시간평균)는 94㎍/㎥로 ‘나쁨’을 보였다. 제주(70㎍/㎥)와 광주(74㎍/㎥) 등 남부지역도 미세먼지가 가득 내려앉아 전 국민이 ‘숨막히는 아침’을 맞았다.

같은 시간(중국 현지시간 오전 8시) 베이징의 PM2.5 농도는 90㎍/㎥으로 서울보다 낮았다. 특히 이번 중국발 미세먼지가 발원한 중국 남동부지역도 난징 86㎍/㎥, 상하이 80㎍/㎥, 광저우 71㎍/㎥, 항저우 48㎍/㎥ 등에 머물렀다.

발원지보다 짙은 미세먼지가 한반도에 쌓이는 요인은 불리한 기상조건과 미흡한 저감대책 탓으로 보인다.

장임석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장은 “국외에서 유입된 미세먼지가 정체된 대기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했고, 여기에 국내에서 생성된 미세먼지도 더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24일은 국외, 25∼26일은 국내 요인이 크다는 게 환경과학원 측의 설명이다. 이날 아침 서해상에 깔린 안개도 미세먼지 농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기체 상태의 대기오염물질이 끈적끈적한 안개에 달라붙으면 미세먼지 같은 입자상 물질로 변하기 때문이다.
‘진입 불가’ 올해 들어 두 번째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2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 주차장 폐쇄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서울시는 이날 공공기관 주차장 456개소를 전면 폐쇄하고 관용차 3만3000여대의 운행을 중단했다.
남정탁 기자

하지만 당국의 비상저감조치는 미세먼지 농도가 최악이었던 24∼25일을 건너뛰고 26일에야 시행됐다.

이 조치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서울·경기·인천의 PM2.5가 모두 50㎍/㎥(나쁨)을 넘을 때’ 발령된다. 24일은 전날 농도가 비교적 낮아서, 25일은 인천지역 예보가 나쁨이 아니어서 모두 비상저감을 피해갔다.

그러나 실제 25일 인천의 미세먼지 일평균 농도는 88㎍/㎥로 지난 한 달간 가장 높았다. 서울과 경기 역시 2015년 관측 이래 최고 농도를 기록했다.

결국 26일 오전 우리나라 대기질은 중국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됐고 뒤늦게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됐다. 정작 이날 오후 들어선 대기 정체가 다소 풀리면서 미세먼지 농도가 서서히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최악의 상황일 때는 가만히 있다가 고비를 넘긴 시점에야 작동한 ‘헛다리 비상저감조치’가 돼버렸다.

지난 1월 중순 고농도 미세먼지가 덮쳤을 때와 비슷하다. 대기예측 모델의 정확도가 낮은 데다 하루 평균 농도를 기준으로 삼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서울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사거리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미세먼지 초비상 26일 미세먼지가 나흘째 전국 하늘을 뿌옇게 뒤덮었다. 밖에 나서면 숨부터 턱 막힌다. 미세먼지 줄이기에 시민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방독면을 쓴 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선 환경단체 회원들 뒤로 경복궁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정말로 방독면 없이 살지 못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무섭다.
남정탁 기자
환경부는 이날 시행된 비상저감조치에 수도권 민간 사업장 33곳도 참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체 193개 사업장 중 20%도 안 되는 데다 이렇다 할 인센티브나 제재 수단이 없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도시에서 가장 큰 오염 배출원인 도로이동오염원도 공공기관 직원들의 차량 2부제 참여와 도로에 물을 더 자주 뿌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27일부터는 PM2.5의 일평균 환경기준이 50㎍/㎥에서 35㎍/㎥로, 연평균 기준이 25㎍/㎥에서 15㎍/㎥로 각각 강화된다. 비상저감조치 기준은 그대로다. 환경부는 27일에도 원래 기준에 따라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