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3-28 00:32:20
기사수정 2018-03-28 00:32:19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한국 정교회 대주교, ‘비잔틴 성화…’ 펴내
“성화를 읽을 줄 아십니까?”
1980년 여름, 유학생이던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한국 정교회 대주교는 이집트의 시나이 수도원에서 성화(聖畵)를 감상하다 한 수도사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는 “책이 아닌데 어떻게 읽을 수 있냐”고 되물었고, 수도사는 “모든 성화는 하나의 펼쳐진 책과 같아서 상징적 언어를 알면 읽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수도사와의 대화는 ‘비잔틴 성화 영성 예술’(전2권)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후일 결실을 맺었다.
조 대주교는 책에서 “성화에 담긴 신학을 이해하려면, 작가 정교회의 교리적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언어를 필수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우리를 지금 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성화를 이해하는 조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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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그리스도 성화는 이집트 시나이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는 6세기 중반의 작품이다.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한국 정교회 대주교는 이 성화에서 두 눈을 달리 표현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정교회출판사 제공 |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표상하는 건 올바른가”
이제는 “성경, 교회, 그리스도, 성령 등 다소 까다로울 수도 있는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시각적 자료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고, 세계미술사의 뚜렷한 한 장면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화의 존립 여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그것이 ‘성화파괴’로까지 이어진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선뜻 믿기 어렵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표상하는 것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됐다.
성화파괴자들은 “형체가 없는 하느님을 형상으로 표현해선 안 된다”는 구약의 계명, “나(하느님)의 얼굴만은 보지 못한다”는 출애굽기의 구절 등을 근거로 성화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런 주장은 726∼787년, 815∼848년 두 차례의 성화파괴 시대로 이어졌다.
성화옹호자들 역시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성 요한은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고 말했다. 성자는 곧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인식이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도 보는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성화의 존재 근거는 확실해진다.
조 대주교는 “787년 제7차 세계 공의회는 성화에 흠숭(예배)이 아니라 공경과 경의를 드려야 한다고 분명하게 결정했고, 이 결정은 교리가 되었으며, 모든 정교 그리스도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교리를 믿어왔다”고 소개했다. 공의회는 “성화에 묘사된 형상과 복음경에 이야기로 기록된 내용은 완전히 일치한다”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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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희보 성화는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정교회출판사 제공 |
◆두 눈으로 표현된 신성과 인성
그렇다면 교회는 성화에 어떤 메시지를 담았을까. 그것의 가장 뚜렷한 사례는 그리스도 성화일 것이다. 조 대주교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 성화’를 책머리에서 설명한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 성화는 시나이의 수도원에서 보관 중인 6세기 중반의 것이다. 조 대주교가 이 그림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이 “아몬드 모양의 인상적이고 커다란 두 눈”이다. 그는 “두 눈의 차이를 통해 성화 작가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신성과 인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엄격한 시선을 한 왼쪽 눈은 끝이 약간 위로 올라간 눈썹과 짝을 이뤄 “‘완전한 하느님’으로서의 신-인(神-人) 예수”를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정하고 심판하시는 유일한 분”으로 사람들의 행실을 심판한다. 반면 오른쪽 눈은 평온하다. 이 눈을 통해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신-인 예수를 나타내고” 있으니 “그분은 우리의 죄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이 되신 분이시고, 인간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거룩한 피를 흘리신 분”이다.
비잔틴 정교회 성당의 돔을 장식하는 ‘만물의 주관자’(판토크라토르)에서도 눈은 성화를 읽는 포인트다. 만물의 주관자에서 창조주, 구원자, 심판자로서의 성격이 드러나는데 “만물을 보실 수 있는 주님의 눈빛은 강하게 표현된다. 그 눈빛은 또한 땅을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님이 세상을 지배하고 섭리로 만물을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조 대주교는 “만물의 주관자 성화는 우리가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에 대항하여 싸울 때 하느님은 우리 곁에 함께 하시는 동반자요 동맹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고 적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