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땜질식 '중소기업 납품단가 현실화' 방안…민간 참여 유도 시급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중된 중소기업들의 원가상승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관련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대책은 공공조달 시장에서 최저임금 인상분이 납품원가에 조기 반영될 수 있도록 공공조달 인건비 산정기준인 '중소제조업 직종별 임금조사'를 연 1회에서 2회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민간 하도급시장에서는 중소기업 인건비 상승을 반영해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하도록 했습니다. 납품단가를 올려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보복하면, 해당 대기업에는 공공부문 입찰자격을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민간 하도급시장에서 통용되는 표준하도급계약서에 '최저임금 인상 등 공급원가 변동을 하도급대금 조정에 적용'이란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당정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상승의 어려움에 직면한 중소기업계 부담을 헤아려 최저임금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토록 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이번 납품단가 현실화 대책에는 표준하도급계약서 개선 및 활용 권고,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적용 범위 확대,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 보복금지 조항 신설 등 중소기업계가 요구해온 사안이 대부분 수용됐습니다.

다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공공부문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엔 납품단가 현실화 방안이 '딴 나라 얘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들의 선의만 믿고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우리네 현실입니다.

당정은 지난 5일 공공조달시장에서 최저임금 인상분이 인건비에 반영되는 시기를 앞당겨 중소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이날 국회에서 '중소기업 납품단가 현실화' 대책 마련을 위한 당정협의를 하고 이 같은 방안을 마련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협의 후 브리핑에서 "공공조달시장에서 인건비 상승 등이 계약금액에 지연 반영되는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당정은 먼저 공공조달 인건비 산정의 기준이 되는 '중소제조업 직종별 임금 조사'를 현행 연 1회(12월 발표)에서 연 2회(5월·12월 발표)로 늘리기로 했다.

이럴 경우 최저임금 인상분이 공공조달 인건비에 반영되는 시기가 6개월 이상 앞당겨지게 된다.

김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중소기업과 장기계약(3년 이상)을 하는 다수공급계약의 경우 인건비 변동 등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납품단가 근거를 수정하기로 했다"며 "인건비 및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해당 제품 원가가 3% 이상 변동되면 계약금액을 조정하는 근거를 기획재정부 계약예규에 반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당정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건비의 급격한 변동이 있으면 3%가 안 되더라도 계약금액을 별도로 조정하는 방안을 추가 협의·검토하기로 했다.

민간 하도급시장에선 대기업 등이 인건비 인상을 반영해 자발적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를 위해 올해 7월부터 시행되는 납품단가 조정제도의 주요 개선내용을 경제단체 등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난해 하도급법 개정으로 임금인상 등 공급원가의 변동도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도의 적용대상에 포함된 바 있다.

표준 하도급계약서에는 '최저임금 인상 등 공급원가 변동에 따른 하도급대금 조정' 내용을 반영하기로 했다.

당정은 현재 하도급 거래에만 적용되는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도를 모든 수·위탁 기업 간 공급원가 변동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상생협력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수급기업이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복행위 금지 및 제재 근거가 상생협력법에 신설된다.

구체적으로 납품단가 조정협의신청을 이유로 위탁기업이 보복행위를 하는 경우 보복행위로 1회만 시정조치를 받아도 공공부문 입찰자격을 제한하는 등 강력하게 제재하기로 했다.

당정은 연구용역을 통해 보복에 대한 손해배상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다는 것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당정 '중소기업 납품단가 현실화' 대책 마련…중기업계 "일단 환영이긴 한데"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납품단가를 인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납품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제대로 가격 협상에 나서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표준계약서 개정을 통한 납품단가 인상이 현장에서 지켜지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7 중소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위탁기업과의 납품 거래 애로에 42.2%(복수응답 허용)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납품단가 미반영'을 꼽았다. 이번 조사는 최저임금 인상 이전에 실시된 것이어서 바로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다만 최저임금이 올라도 중소기업들이 납품단가를 인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것을 엿볼 수 있다.

'납품대금 결제기한을 지키지 않는 것(미준수)'이라고 답변한 비율도 34.6%나 됐다. '납기(납품날) 단축·촉박'을 애로사항으로 답한 비율은 34.1%였다.

중소기업들이 단가 인상에 나서기 힘든 이유로는 '지나치게 높은 의존도'가 꼽힌다. '납품 중단=폐업'인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조사 대상 기업들이 위탁기업과의 거래에서 거둔 매출은 199조원이었다. 이는 납품 기업 전체 매출액 245조원의 81.4%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기업규모별로는 소기업의 위탁기업 의존도가 87.1%로 중기업 75.8%보다 11.3%포인트 높았다.

중소기업들은 올해 납품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연초 물가 인상이 확산하는 가운데 경영 여건상 기존과 같은 가격으론 계속 버티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휘발유 가격도 23주 연속 상승하는 등 유가도 오름세고 올해 최저임금도 작년보다 16.4% 인상됐다.

◆원청업체 vs 협력기업 '갑(甲)·을(乙) 관계' 해소 가능할까?

중소 협력사에 특정 대기업과 거래하도록 강요하는 전속거래가 기업 간 양극화를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왔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산업연구원이 최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하도급거래 공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과 전속거래 관계에 있는 협력중소기업의 경영성과를 분석해 발표했다.

전속거래는 원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협력사에 특정 사업자와만 거래를 강요하는 행위를 말한다. 전속거래가 협력중소기업에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글로벌 진출 제한 등 불공정거래의 핵심 이유로 지적되면서 현 정부는 전속거래 구속행위 금지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 선임위원은 "전속거래가 중소협력사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을 활용한 안정적인 시장 확보 등 장점도 있다"면서도 "과도한 납품단가 인하로 인한 핵심역량 저하, 거래 모기업의 과도한 리스크 전가, 협력사의 저임금·비정규직 채용 등 부작용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전자 산업에서도 대기업은 최근 3년간(2013∼2015년) 영업이익률이 9∼13%였지만, 전속협력업체는 3%대로 크게 차이가 났다.

그는 "전속거래를 제한할 경우 국내 협력업체의 위기는 단기적으로 가중되겠지만, 기존 하도급 관계가 수평적 거래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전속거래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협력업체에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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