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초대석]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자녀세대 ‘불안한 미래’ 공감대 … 노동격차 해소 나설 것”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나는 좋은 회사 다니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받아요. 다른 회사에서 돈을 적게 받는 애가 있으면 나쁜 회사 다니면서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치부합니다. 이게 그동안 우리의 관념이었어요. 왜 나쁜 회사인지, 왜 돈을 적게 받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저출산과 청년실업 등의 문제로 국가적 미래가 위협을 받게 됐습니다. 사회·경제적 격차 문제에 대해 국민적 고민이 시작된 겁니다.”

문성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2018년 한국사회가 당면한 각종 문제의 축에 ‘사회·경제적 격차’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격차 중 가장 기본이 임금과 관련한 ‘노동 격차’다. 복잡해 보이지만,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문 위원장의 판단이다. 취임 9개월째를 맞이하는 그가 사업장별·산업별 차원을 넘어 사회적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 위원장은 제 3차 노사정 대표자 회의를 앞둔 시점에 “사회적대화는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전 국민적 열망이 담긴 중차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20일 노사정위 위원장실에서 문 위원장을 만나 사회적대화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문성현 위원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제3차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앞두고 각종 현안을 어떻게 정리할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제원 기자
―현재 노동시장과 경제 전반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보는지.

“사회·경제적 격차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도 있지만,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 노동자의 임금 등 격차가 심하게 벌어졌다. 이게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까지 이어진 것이고. 격차는 노사 격차도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사용자 간 격차, 노조와 비노조의 노동자 간 격차도 있다.”

―격차 중에서도 최근에는 청년실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대기업의 이윤율은 9%이고, 중소기업은 2%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차이는 2배인데, 어떤 청년이 중소기업에 가고 싶겠나. 최저임금 시급이 1만원, 연봉으로 따지면 2500만원 정도 된다. 이 정도는 돼야 먹고살 것이고, 결혼하면 둘이 벌어 5000만원이 돼야 아이를 낳고 살 만하다는 거다. 모든 문제가 격차에 얽혀 있다.”

―격차의 기본인 최저임금도 논란이 한창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따지기에 앞서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 이중적이다. 상여금과 수당에 대해 사용자는 통상임금에는 넣지 말고 최저임금에는 넣자고 한다. 노동자는 반대다. 넣을 거면 같이 넣고 뺄 거면 같이 빼야지 이런 상황이 어디 있나. 토론을 통해 이 또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사회적대화 기구 이름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잠정 결론났다. 기존 노사정에서 ‘정’이 빠진 것인데, 결론 강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균형 잡고 뒷받침할 것인가.

“노동자에 유리한 정부냐, 사용자에 유리한 정부냐 관점에서만 논란이 진행되는 측면이 너무 크다. 사실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동안은 거의 노동자에게 불리한 정책이 관철됐다. 이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노동자 편에 서서 진행할 수만은 없다.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예로 들면 노동자도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사용자는 당연히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정부 또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이 같이 참여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입체적으로 풀어가야 할 것이다.”

―첫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시작된 지도 3개월이 돼 가는데, 여전히 사회적대화가 잘 진행될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다.

“이번 사회적대화 테이블이 마련된 것은 경영계와 노동계, 정부 모두 위기의식이 임계점에 이른 걸 인식하고, 이대로는 미래, 구체적으로는 우리 자녀세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 노조를 통해 고임금을 확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30년이 지난 현 지점에서 아들과 딸은 자신과 같은 지위를 누리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영계는 중소기업과 하청기업의 일자리를 비정규직과 외국인노동자가 채우면서 부품은 물론 전반적인 제품의 질이 저하돼 결과적으로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가 찾아왔다. 정부는 정부대로 청년실업과 저출산, 교육개혁 등 여러 사안을 해결해야 하는데, 노동시장의 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느 정책 하나도 펼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외부적 요인도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노사 모두 엄청난 압박을 느끼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다. 미래를 위해서는 당연히 전기차와 수소차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같은 대립적 노사관계로는 할 수 없다. 공정을 개편하고 구조조정 등 플랫폼 전반을 대대적으로 고쳐야 하는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것을 허락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촛불이 사회적대화를 이끌었다고도 볼 수 있을까.

“30년 전의 대화 방식은 투쟁이었고, 그 도구는 화염병이었다. 그게 촛불로 바뀐 것이다. 노사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대화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화의 방향과 목표도 중요하지만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노사가 투쟁하고, 비난하고, 발목잡기식으로 대화하면 안 된다.”

―전 국민이 격차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촛불 정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이게 나라냐’였다. 그건 단순히 ‘최순실·박근혜의 나라냐’는 차원이 아니었다. 격차로 인해 아이 낳기 힘든 상황, 대학까지 나와도 취직하기 힘든 상황, 장시간 일해도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 등 전반에 대해 국민이 인식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대화의 태도와 방식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데.

“신뢰 부족에 대한 언급도 많은데, 단순히 믿음의 문제만은 아니다.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면서 출발해야 한다. 각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사용자는 ‘내가 노동자여도 그럴 것 같다’, 노동자는 ‘내가 사용자여도 그렇게 할 것 같다’ 등의 생각도 해야 한다.”

―2차 대표자 회의에서 나온 주체 확대 부분도 주목되는데.

“사회적대화 형식의 문제 해결에 대해 사실 모두의 실력이 부족하다. 노사정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거고, 새로운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가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양대노총이든 경영계, 중소기업, 비정규직, 정부 등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 모든 주체의 목소리를 듣고 소외없이 충실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주체 확대로 의사결정이 복잡해진다는 우려도 있는데.

“문제 해결 방향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사회적대화는 단계적·부분적으로 진행될 텐데, 거기에 당사자가 빠질 수 없다. 청년 일자리 문제에 어른은 절실하지 않다. 절실하지 않은 사람은 주장했다 안되면 빠져도 된다. 이 때문에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들은 100이 필요하지만 30, 40이라도 받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노동계의 최대 현안인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포괄임금제 등이 결국 향하는 방향은 임금체계 개편이다. 이를 감안하고 있는지.

“격차 문제를 다루다 보면 임금체계와 곧바로 연결된다. 기업마다 임금체계가 완전히 다르면 격차의 비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공통점과 통일성이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만 봐도 그렇지 않나. 산업별 차이, 직업 차이 등에만 골몰해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사회적대화의 진도는 어느 정도라고 봐야 할까.

“큰 고비를 넘겨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우선, 합의 내용을 기반으로 국회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법 개정안을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노사합의의 선례들도 이미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 SK이노베이션이 임금상승률을 소비자 물가상승률에 연동하기로 했다. 노동자는 그 정도 받으면 된다는 것이, 사용자는 그 정도 줄 수 있다는 합의점을 찾은 거다. 그것도 의미가 크지만, 더 중요한 것이 상생기금이다. 상생기금으로 중소기업과 하청기업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무금융노조가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기로 하고 선포식을 가졌다. 이 또한 사회 불평등·양극화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노사가 합의했는데, 정부와 경영계, 노동계가 모두 참석해 감동하는 분위기였다. 너무 좋았다. SK이노베이션이 기업별이었다면 사무금융노조는 산별로 확대된 것이다. 사회적대화, 노사합의의 물꼬는 이미 터졌다.”

대담=박희준 사회부장, 정리=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1952년 경남 함양 출생 ●경남 진주고 ●서울대 경영학과 ●민주노총 전국금속연맹 위원장 ●최저임금심의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동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