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4-28 06:00:00
기사수정 2018-04-28 00:30:56
이상규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前 국립국어원장 / 국어학자로 방언연구 등 심혈 / 방언이 모여 표준어가 형성돼 중요 / 美 대학에 국내 방언지도 소개 호평 / 원장 재임 때 세종학당 세계화해 보람 / 숙종 때 최석정 연구서 ‘경세훈민정음’ / 현대어로 알기 쉽게 풀어 최근 발간 / 어렵고 복잡하고 뒤처진 어문정책 / 지금 어문규범 일제 때 제정한 그대로 / 외래어 표기법 세부규정 나도 헷갈려 / 이론보다 실용·감성교육에 역점 둬야 / 남북학자 공동 연구 등 교류 절실 / 2006년 남북 첫 지역어조사 약속에도 / 이듬해 ‘겨레말 큰사전’ 추진하며 중단 / 양측 언어 이질화 심각하다는 데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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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국어 연구에 매진해 온 이상규 교수는 “한두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한국어 어문 규범”이라면서 “도대체 우리 국어 정책이 있기나 한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
“지금 한국어 어문 규범의 뼈대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제정한 그대로입니다. 당시 일본은 도쿄 말을 표준어로 했는데, 조선총독부도 서울 중류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표준어로 정한 다음 지금껏 그대로입니다. 이는 시대에 맞지 않아요. 표준어란 용어 대신에 ‘대한민국공통어’로 바꿔야 합니다.”
국립국어원장(2006∼2009)을 지낸 이상규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는 “일본은 이미 1943년 표준어 정의의 문제점을 인식해 다수의 사람이 쓰는 ‘공통언어’를 표준어로 정한다고 고친 바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어느 국어학자보다도 국내 방언연구에 힘써왔다. 애초 방언이 모여 표준어가 형성되기 때문에 방언 연구가 중요하다. 강의가 끝나고 방학 때가 되면 이 교수는 본인이 개발한 국내 방언지도를 들고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방언지도란 지역별로 어떤 언어가 쓰이고 있는지를 컴퓨터로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미국 내 몇몇 대학에 한국어 방언지도를 소개해 학술적인 호평도 받았다.
특히 심혈을 기울여 온 프로젝트는 남북한 언어 동질화 작업이다. 이 교수 등이 중심이 된 남북 국어학자들은 2006년 처음으로 만나 ‘남북한 지역어조사’를 추진하자고 약속했다. 공통 질문지도 함께 만들었다. 예비 타당성 조사를 네 차례나 진행했다. 당시 남북한 방언 연구가 절실하다는 사실은 남북한 국어학자들이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듬해 갑자기 ‘겨레말큰사전’ 사업이 남북한 공동으로 추진되면서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버렸다. 이 교수는 “남북한 지역어조사 사업이 최우선 재개되어야 남북한 간 언어의 이질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서 “이웃 일본의 경우 ‘국립국어연구소’는 민간 법인기구임에도 활발히 방언조사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의 한글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명곡 최석정이다. 명곡과 더불어 병와 이형상, 여암 신경준 등도 빼어난 언어학자들이었다. 한글 곧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이 창제한 세계적인 음소문자다. 한글에 대한 이론적 연구서는 1446년 세종이 8명의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이루어낸 ‘훈민정음해례’가 처음이었다. 이후 350여년이 흘러 훈민정음을 본격 연구한 학자는 조선 후기인 숙종 4년(1678) 최석정이었다. 명곡은 ‘경세훈민정음’을 남겼다. 이 교수는 명곡이 쓴 ‘경세훈민정음’을 현대어로 쉽게 풀어내 최근 출간한 바 있다.
국립국어원장 재임 시절 이 교수가 추진한 사업에 세종학당도 있다.
이 교수는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한류’의 원천은 사실상 한글”이라면서, “2005년 국어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한류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때마침 중국정부는 ‘공자학당’ 설립을 막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이 교수는 한국어와 한글 세계화 프로그램인 세종학당 설립을 밀어붙였다. 현재 세계 각국에 157개 세종학당이 설립되어 운영 중이다.
다음은 이 교수와 주요 일문일답이다.
―국어학자로서 평생을 매진하셨다. 한국어 사용자가 얼마나 많은가.
“전 세계에 한글과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7800만명이다. 재외국민(교포)이 인구 비율에 비해 가장 많은 700만명이나 된다. 숫자로 보면 한국어 사용자가 전 세계 12위권이다. 프랑스어 사용자보다 더 많다. 그리고 국제결혼을 한 국내 거주 다문화 여성이 40만명을 넘어섰고 외국의 한국어 학습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여건 변화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광복 이후 1948년부터 전국 대학에 설치된 국어국문학과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학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상당한 진전을 보았다. 그런 반면 언어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점이나, 국제화·정보화라는 언어 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나의 아버지가 배우던 대학 국어책을 내가 배우고, 또 이것을 다음 세대에 마치 유물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도대체 말이 되는가?”
― 현재 우리 어문 정책은 어떤가.
“현재 국어정책의 핵심인 한국어 어문 규범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외래어 표기법’의 세부 규정을 들여다보면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나도 헷갈린다. 어려운 규정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따르라는 것은 잘못이다. 지나치게 이론화하여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국어교과서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등의 문학작품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은 이를 감상하고 평가하는 정서교육에 목표를 두고 있다. 결론적으로 교육량을 줄여야 한다. 국어교육 교과과정은 최대한 단촐하게 줄여나가고, 교육 목표를 이론보다는 실용적인 감성 교육에 더 두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계 속의 한국어와 한글을 어떻게 연구하고 활용할 것인지 연구해야 한다. 언어정보라는 빅데이터를 용이하게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과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테면 방언 연구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최근 미국 유타주 프로보에서 열린 조선사연구 세미나에서 미국인 교수가 한글 방언을 빅데이터화해 보여줘 큰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방언 연구가 중요한가.
“그래서 수차례 국립방언연구원을 설립할 것을 촉구했다. 절실한 문제다. 표준어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라도 방언 연구를 해야 한다. 이것이 국어의 새로운 공급원이 되는 것이다. 어떤 말이든 말과 글은 다양하고 귀중한 지적 정보를 지니고 있다. 서울과 변두리라는 개념, 경제적으로 앞선 국가의 언어가 우월하고 변두리나 피지배국의 언어가 열등하다는 인식은 곤란하다. 서울 사람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인간 삶의 흔적이 묻어있고 고유한 지식 정보가 담긴 ‘언어의 다양성’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나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일부 인사들로부터 내가 국립국어원장이 아닌 방언연구원장이라고 핀잔을 들었다.”
―남북한 간 활발한 교류가 진행될 터인데, 앞으로의 과제는.
“물론이다. 국어원장 재임 시절에 북쪽의 문영호 사회과학원 언어연구소장을 만나 남북 간 언어의 이질화가 심각하다 하니 동감하더라. 그 역시 현안에 매우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정부 담당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국어민족문화과의 정책 목표는 매우 불투명하다. 전 세계에서 21개 국가별 외래어 표기법이 존재하는 나라는 아마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 같은 허상의 어문 정책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최석정에 대해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명곡은 숙종조에 8차례나 영의정을 지낸 대학자요 선비다. 임병양란과 인조반정 이후 피폐해진 조선, 흔들리는 왕권을 굳건히 보위한 인물로 훌륭한 정치인이다. 세종 이후 조선시대 각종 학문 연구의 중흥을 이끌어낸 업적이 크다. 그는 노장학과 양명학, 청나라로부터 밀려든 청학과 실학의 기풍을 융합해 신유학의 질서를 잡은 대학자다. 그로 인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 거의 350여 년간 중단되었던 훈민정음 연구가 새롭게 재개되었다. 이는 조선 전기와 달리 변화된 조선의 시대정신과 사상적 조류를 읽어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연구 업적이다.”
―명곡은 훈민정음이 이상적인 정음을 복원하는 데 탁월한 도구라고 풀이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28자로 만들었다. 애초 이들을 조합해 80여 글자가 사용되었는데(당시 불경 서적이나 동국정운이나 홍무정운역훈과 같은 운서에 쓰임), 세종은 28자만으로도 다양한 외국어를 표기할 수 있어 경제성과 편의성을 고려해 28자로 제한했다. 그러나 오늘날 잘못 이해하고 있다. 한글로 전 세계 모든 언어를 표기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다. 이를테면 러시아의 ‘r’, 영어의 ‘f’, ‘v’는 한글로 표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순경음이나 반치음을 다시 살려서 사용하자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그렇게 확장하면 지금 쓰고 있는 24자가 아니라 수백개의 문자로 늘려야 한다. 배우기 어렵고 문자 활용의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세종이 이를 헤아려 28자로 제한한 것이다. 물론 4개의 문자가 사라지고 지금은 24자만 쓰고 있다.”
―한글 보급을 위한 제언이나 방안이 있다면.
“거듭 부연한다. 2007년 설립한 세종학당의 운영기조를 개선해야 한다. 한글과 한국어 보급만을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농업기술이나 공업기술 교육을 병행한다면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외국 젊은이들이 세종학당을 통해 기초 한글 교육을 받은 이후 국내 농촌이나 공장의 현장 인력으로 활용되고, 대학교육까지 연계된다면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 이들에 대한 인권·노동 착취 시비를 없앨 수 있고, 한국 기술과 한국 언어문화를 가르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이상규 교수는
△1953년 경북 영천생 △경북대 국문학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박사 △국립국어원장(2006∼2009) △외솔상 수상(2011·문화부문) △봉운학술상 수상(2012) △대구광역시 교육위원(6대) △경북대 국문과 교수(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