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5-04 20:37:57
기사수정 2018-05-04 22:16:37
‘송도삼절’로 꼽히는 기생 황진이/ 北 최고 작가 홍석중도 소설로 써/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후보 올라/ 남북 훈풍이 문학에도 닿았으면
우리 문학에서 가장 오랜 시조집 ‘청구영언’이 전하는 시조 한 수. 조선 중기의 절창 황진이의 작품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 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너무 이름 있는 시편이라 달리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황진이는 유학자 서경덕, 명승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로 불린다. 송도는 고려의 도읍이었던 유서 깊은 도시, 지금은 북한의 황해북도 중서부에 있는 개성이다. 그 개성이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의 후속조치에 따라 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되는 장소로 떠올랐다. 분단의 현장 판문점에서 불과 12㎞의 거리다.
개성의 상징인 황진이는 조선조 여인으로서 보기 드물게 자기주체성을 확립하며 살았고 시문과 가창에 능했으며 명편의 시조 몇 수가 남아 지금도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낸다. 황진이가 고승 지족선사를 파계시켰다는 설화나 황진이의 무덤에 잔을 올리고 시를 바친 당대의 문사 백호 임제가 파면됐다는 고사를 비롯해 그 주변에 거느린 예화들이 자못 풍성하다. 우리가 이를 기억하는 것은 황진이를 소재로 한 소설 때문이다.
필자가 읽은 ‘소설 황진이’만 해도 이태준, 유주현, 전경린, 김탁환 등의 작품이 있고 특히 북한 작가 홍석중이 쓴 작품도 있다. 어느덧 황진이는 홍길동이나 임꺽정이 그러하듯 우리 문화적 인식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았다. 이 많은 황진이 소설 가운데 강렬하게 내 가슴을 울린 것은 유주현의 것이었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을 절묘하게 조합해 황진이라는 인물의 개성과 매력을 손에 잡힐 듯이 형상화했다. 마치 역사 소재의 소설이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하나의 모범을 보는 것 같았다. 그의 다른 장편소설 ‘대원군’을 연이어 읽어보면, 역사소설을 창작하는 이 작가의 견식과 기량이 간략하지도 흔하지도 않다는 후감을 남긴다. 그런데 소설의 미학적 가치는 그에 못 미치나 엄중한 주목을 요하는 황진이 소설은 홍석중의 작품이었다. 이는 북한 작가의 소출이라는 단순한 판단의 차원에 머무는 상황이 아니었다.
홍석중은 북한 최고의 작가로 일컬어진다. 그 가계도 심상치 않다. 증조부는 대한제국의 관리였다가 경술국치에 자결한 홍범식이고, 조부는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다. 벽초가 6·25전쟁이 끝난 후 월북해 북한에서 활동하는 동안 그의 아들이자 저명한 국어학자였던 홍기문은 북한이 자랑하는 ‘리조실록’ 편찬의 책임을 맡았다. 홍석중은 이 학술과 문학의 혈통을 이어받았고 황진이 이외에도 대하소설 ‘높새바람’을 비롯한 많은 작품이 있다. 그가 쓴 ‘황진이’는 남한 작가들이 쓴 같은 소재의 소설과 이야기 구도가 다르다. 이 소설에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놈이’는 황진이의 정인이자 가장 하층계급의 하인이다.
이를테면 황진이의 사랑과 예술과 남성 편력에 초점을 두지 않고 사회주의적 세계관을 조선 중기를 살았던 한 기녀의 삶에 부하한 형국이다. 세간의 화제가 됐던 것은 그와 같은 관점의 특정이 아니라 이 소설이 그동안 북한 문학에서 볼 수 없었던 성애 장면을 사뭇 농밀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동시대 남한 소설에 비하면 초보 단계라 할 수 있겠으나 북한 문학으로서는 크게 놀랄 형편이었다. 이와 관련해 모 신문과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북한 문학에 이러한 표현의 자유가 조속히 확장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 문단에서는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해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기도 했다.
홍석중은 이 소설을 150번이나 고쳤다고 술회했다.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사회주의 현실주제’에 입각한 것이지만, 북한 문학은 여전히 1967년 이래의 주체문학이 완강한 성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제방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틈새의 균열에서 말미암지 않는가. 그러한 기대로 모처럼 불어닥친 남북 간의 봄바람에 문화와 문학의 변화가 그 행보를 효율적으로 부양했으면 좋겠다. 개성과 황진이와 홍석중을 함께 떠올려보는 것은 남북 공동의 연락사무소가 들어설 자리에 이들이 함께 얽혀 있는 까닭에서다.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