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의 임금도 못쓰는 대학원생들 “저는 교수의 노예”

[추적스토리-甲甲한 직장⑧-ⓒ] 노동권 찾아나선 대학원생들
“저는 노예입니다.”

서울의 한 공과대학 박사과정 대학원생 A씨는 2016년 한 자료에서 자신의 고달픈 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이 조교 업무나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통장으로 받은 임금을 맘대로 써본 적이 없어서다.

임금은 분명 A씨 명의의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그 통장에 있는 돈을 쓰려면 지도 교수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가 근무 대가로 받은 돈은 연구실 운영비에서 구멍 나는 부분을 메우거나 다른 대학원생의 임금으로 쓰인다고 증언했다.

A씨는 “연구실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며 “나뿐 아니라 대부분 대학원생이 불이익을 받을까 봐 여전히 부당한 대우를 참고 지낸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의 사이버 연구윤리 교육과정 자료(2016)에 따르면 그동안 대학원생들은 폐쇄적인 학계 풍토, 엄격한 상하관계 때문에 부당 처우에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해왔다. 학점·졸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기도 하고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다행히 지난해 11월 대학원생 신분의 조교도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고용노동부의 첫 판단이 나왔다. 2017년 12월 동국대 대학원총학생회가 조교 458명의 연차수당,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학교 측을 고발한 사건에 대해 조교들이 대학의 지휘감독 안에서 업무를 하는 만큼 근로자가 보는 게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 대학원생 조교 10명 중 9명은 근로·조교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어 처우와 인권 환경 개선을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따르면 전국 주요 대학교에서 행정·교육·연구 등을 하는 대학원생 조교 1만1679명 중 1만585명이 업무와 관련한 계약 없이 근로를 제공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교 유형별로 보면 학생 수업지도나 강의 준비 등을 하는 교육 조교의 경우 37개 대학 4122명 중 3900명(94.61%)이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32개 대학 4899명의 연구조교 경우에는 계약서 미체결 인원이 4755명(97.26%)에 달했다.

대학원생들이 최근 교수들의 ‘계약 갑질’에 대해 처우 개선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그동안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온갖 ‘갑질’과 ‘열정페이’ 등을 강요당하면서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던 대학원생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조직한 거다. 지난해 12월 성균관대·고려대·동국대 등 전국 6개 대학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지 두 달여 만에 조합원 소속 대학이 20여개로 늘어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지난 2월 공식 출범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공동기획> 세계일보·직장갑질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