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5-19 00:06:57
기사수정 2018-05-19 00:06:56
조선시대 만든 지도 생활상 담겨 / 색채·예술적으로도 높은 가치
지난 4월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정상회담은 여러모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북한에서 그 재료를 직접 가져온 평양냉면은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평양냉면은 올해 가장 뜨거운 음식이 될 전망이다.
평양냉면이 조선시대에도 크게 각광을 받았음은 조선후기에 평양의 모습을 그린 지도에서도 확인된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돼 있는 ‘기성전도’(箕城全圖)는 조선후기 평양성과 그 주변을 그린 지도이다. ‘기성’(箕城)이라는 지명은 평양이 고대 기자조선(箕子朝鮮)의 수도라는 뜻에서 붙여진 평양의 또 다른 명칭이다. 그림은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느낌이며, 화면은 대각선 구도로 배치해 평양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게 했다. 평양성은 대동강변에 떠 있는 모습이며, 근경에 늘어선 강변의 나무들과 원경의 나지막한 산 사이에는 원근법이 적용됐다. 대동강에는 능라도와 양각도의 섬이 그려져 있고, 평양성 안에는 을밀대, 현무문, 모란봉, 부벽루, 주작문, 대동문 등의 유적지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대동강을 따라 20여 척의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과 함께 대동강변의 향동(香洞)에 ‘냉면가’(冷麵家·냉면집)가 조성돼 있는 모습이다. 평양냉면의 명성이 조선후기 지도에까지 표시돼 있는 것이다. 조선후기 평양은 상인들이 활발하게 물품을 교역하는 공간이었고, 바쁜 일상에서 한 그릇의 평양냉면을 먹으며 피로를 풀었을 것이리라.
이처럼 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에는 당시의 생활상까지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1872년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에 제작된 472장의 전국지도에도 흥미로운 정보들이 있다. 흥선대원군의 국가정책을 반영하듯 사창(社倉)이 전국에 그려진 것도 흥미롭다. 대원군은 고리대금업으로 전락한 환곡(還穀)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전국에 사창 설립을 지시하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실현됐는지 여부를 지도를 통해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대원군이 강력하게 추진한 해방(海防) 정책이 강조된 점도 주목된다. 오늘날 부산시를 포괄하는 동래부 지도에는 읍성이 그려져 있는데 익성(翼城), 옹성(甕城)으로 이루어진 모습과 성을 둘러가며 세운 망루가 보인다. 읍성을 중심으로 해안 지역에는 좌수영, 부산진, 다대진(多大鎭) 등의 진영을 그렸으며, 북쪽에는 금정산성의 모습이 나타난다. 남쪽의 절영도(絶影島) 근처에는 왜인과 교역을 했던 왜관(倭館)이 그려져 있다.
지금도 남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춘향의 고을이라는 점인데, 남원 지도를 보면 광한루와 오작교가 특별히 크게 표현돼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당시에도 ‘춘향전’의 명성이 남원을 대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천안 지도의 ‘삼기리’(三岐里)는 지금도 유명한 ‘천안삼거리’를 표시한 것으로, 천안삼거리의 유래가 오래됐음을 알 수가 있다.
지도에 표시된 정보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읽어볼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자녀가 출산하면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을 선정해 그 태(胎)를 묻었다. 이러한 태를 조성한 지역에는 태실(胎室)이나 태봉(胎封)과 같은 명칭이 보인다. 실록과 같은 국가 주요 기록물을 보관한 사고(史庫)가 있었던 지역인 경상도 봉화, 전라도 무주, 경기도 강화, 강원도 강릉 지도에서는 사고의 그림을 쉽게 확인할 수가 있다. 강원도 양양의 지도에는 지금도 관광지로 유명한 설악산 오색리에 약수(藥水)가 표시돼 있다. 전라도 해남과 진도, 순천 지도에 표시된 구선(龜船)을 통해서는 당시까지도 해안의 요충지에 거북선이 존재했음을 알 수가 있다. 지도의 색채도 아름다워 예술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광물이나 식물에서 채취한 천연 물감으로 그려서 색채가 선명하고 잘 변색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에 나타난 정보를 통해 조선시대를 살아갔던 선조의 모습과 그 현장을 만나 볼 수가 있다. 조선후기 평양의 모습을 그린 ‘기성전도’에 표현된 냉면집의 모습을 보면 평양냉면이 더욱 절실해질 것 같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