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누가 여성을 화나게 만들었나… 애매한 '몰카' 유죄의 기준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시위를 열고 공정한 수사와 몰카 촬영과 유출, 유통에 대한 해결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초 대법원은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 여성의 신체부위를 몰래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로 기소된 유모(29)씨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북부지법 항소부로 돌려보냈다. 사진에는 가슴을 중심으로 상반신이 담겨 있었지만 회색 티셔츠에 레깅스를 입고 있어 외부로 노출된 부위가 없었다는 이유다. 대법원은 가슴 부위를 강조하거나 윤곽선이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지적하며 “평균적인 사람들 관점에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앞서 유씨는 2013∼2014년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49건의 몰카를 찍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때에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역시 노출이 거의 없고 특정 부위를 부각시킨 사진이 아니었다는 이유다.

지난 19일 서울 대학로에서 여성 1만여명(경찰 추산 9000명)이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를 벌인 가운데 불법촬영을 처벌하는 규정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한 불법 촬영이라도 피해자의 옷차림, 사진 구도에 따라 유무죄가 나뉘기 때문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는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문제는 ‘성적 욕망’, ‘수치심 유발’의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사진의 객관적 특성에만 중점을 둬 당사자 의사에 반해 신체를 촬영해도 무죄가 종종 선고된다는 점이다.

2015년 서울북부지법도 지하철 역사 등에서 수십 차례 여성의 몸을 몰래 찍은 혐의로 기소된 이모(36)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그해 4월 지하철 4호선 범계역 계단에서 여성을 뒤따라가며 몰래 사진을 찍는 등 5월 중순까지 거의 매일 ‘몰카’를 찍었고 스마트폰에 담은 58장을 보관했다. 당시 법원은 이씨가 찍은 사진들 중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꼬고 앉은 여성 등의 전신을 찍은 16장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유교 성향이 짙던 우리 사회도 시스루, 핫팬츠, 미니스커트 등 여성 패션의 빠른 진화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며 “노출이 심하다 해서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의 전신까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로 해석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판시했다.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시위를 열고 공정한 수사와 몰카 촬영과 유출, 유통에 대한 해결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폭력범죄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가 종종 무죄로 판결이 나는 이유는 엄격한 대법원 판례 때문이다. 2009년 형성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피해자 옷차림, 노출 정도, 촬영 의도와 경위, 장소·각도·촬영거리, 특정 신체부위 부각 여부 등이 유무죄 판단의 기준이다. 당사자 의사에 반해 신체를 찍었어도 각도와 특정 신체 부각 여부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당사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해도 의사에 반한 촬영을 아직까지 형법상 금지하지는 않는다“며 “이럴 경우 손해배상 등 민사재판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 현장에서는 ‘민사를 통해 배상금을 받는 일이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비용 대비 실익이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난 사건을 민사재판에서 뒤집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윈앤윈 장윤미 변호사는 “형사재판에서 확정된 사건을 민사에서 뒤집어 피해자가 보상받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비용 대비 실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본인 의사에 반해 찍은 사진으로 불쾌감을 느껴 민사재판에서 승소해도 손해배상액은 200만원가량”라며 “민사재판은 법리적으로 다투는 영역도 넓어 시간·비용 대비 효용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가 공전하면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시 박남춘 등 여야 의원 13명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의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 문구를 ‘성적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 문구로 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치권 인사는 “국회가 계속 공전하면서 다른 법안들에 비해 해당 개정안이 뒷순위로 밀렸다”며 “몰카에 의한 성범죄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