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5-25 10:00:00
기사수정 2018-05-24 22:23:51
[스토리세계-자살공화국 오명②-ⓐ]사회의 외면에 극단의 길로 내몰리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
2016년 9월 대전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A양은 세상을 등졌다. 당시 A양은 자신의 신체부위와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20대 남성 B씨로부터 끊임없는 협박과 강요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A양이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한 나체사진을 보고 연락을 주고받다가 2017년 1월 A양을 집으로 불러 여러 성적 행위를 한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등 15회에 걸쳐 청소년 음란물을 제작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견디기 힘든 시간. 결국 E양은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택했다.
24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발간한 ‘2018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자해, 자살을 시도한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자해, 자살 시도자 중 여성은 53.3%, 남성은 46.5%였고, 실제 자살사망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높았다.
여성의 자해와 자살시도를 줄이기 위해 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사회의 약자인 여성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다.
◆경찰은 가해자 격리 않고 수사…뒤늦게 대구 자매자살 조사
14년 전, 대구지역에서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던 A씨는 젊은 나이에 생을 등졌다. 당시 연기자라는 꿈을 키워가던 A씨는 보조출연자 관리인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A씨에게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준 여동생도 죄책감에 자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A씨는 경찰에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고소했지만 경찰은 가해자를 격리하지 않은 채 수사를 진행했고 이후 가해자들의 협박이 지속되자 결국 고소를 취하했으며 이후 정신적 충격을 입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찰은 2004년 이들 자매가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며 자살한 사건과 관련,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청은 본청 성폭력대책과와 감찰, 수사,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소속 경찰관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번 진상조사는 ‘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 재수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은 데 따른 것으로 이철성 경찰청장이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성폭력 등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판사 언행이 억울해” 이중 피해 입는 여성들
2011년 성폭력 피해자로 법정에 나간 20대 여성 C씨는 “판사 때문에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서울 오류동의 한 모텔 객실에서 E씨가 숨진 것을 모텔 직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C씨는 화장실 욕조 안에 누워 있었고 객실 탁자 위에는 ‘재판 중 판사의 언행이 억울했다’고 적은 유서가 발견됐다. C씨는 당시 재판에서 판사로부터 “노래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가 보듬어야할 여성들이 사회에서 상처를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2015년 12월 27일 밤 친구 소개로 부산으로 여행을 간 D양은 술에 취한채 E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D양은 E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E씨는 D양이 허위진술을 한다며 무고 혐의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이후 검찰이 고소를 각하하고 E씨가 민사소송을 취하했지만, 이 과정에서 D양은 상당한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자살까지 시도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어야만 했다.
◆“초등 선배가…” 교내 성폭행 피해 여학생도 극단 선택...교내 성폭력 급증세
2015년 6월 횡선군의 한 소녀 F양도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F양은 초등학교 선배인 G군 등 3명으로 부터 당시 술에 취한 채 인적이 드문 농로에서 성폭력을 당했다. 이후 G군이 사는 아파트로 간 F양은 다음날인 6월 17일 오전 5시 15분쯤 창문을 통해 투신해 숨졌다.
춘천지법 원주지원 제1형사부는 아동ㆍ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기소 된 G군 등 3명에게 각각 징역 장기 3년 6월, 단기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성인 여성보다 청소년들에게 성폭력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 성폭력을 겪은 학생 중 60%가 넘는 학생들이 실제 자살을 고려해 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교내 성폭력 사건은 3년간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전국적으로 학폭위에 넘겨진 성폭력 사건은 2013년 878건, 2014년 1429건, 2015년 1842건, 2016년 2387건으로 4년간 171.9% 증가했다. 성폭력 피해 건수는 연평균 1634건이다. 피해학생은 연평균 2241명이나 된다.
김재엽 연세대 교수의 ‘여자 청소년의 성폭력 피해 경험과 자살 생각의 관계’ 논문에 따르면 중ㆍ고교 여학생 1019명 가운데 16.2%(165명)가 어떤 유형의 성폭력이든 겪은 적이 있고, 이들 중 63.6%(105명)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생각해본 것으로 조사됐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사진= ‘스쿨미투’ 페이스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