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5-28 19:14:00
기사수정 2018-05-29 08:52:32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 확산 / 법원행정처 사법행정권 남용 / ‘정점’ 梁 前 원장 조사 못하고 / 형사조치 않자 내부 반발 거세 / 김명수 “합당한 조치·대책 마련 / 관련자 형사고발도 검토하겠다” / 前 대법원장 檢 수사는 전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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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9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시작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파문이 결국 검찰 손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3권분립의 한 축인 대법원장을 지낸 인사가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사법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검찰이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와 박근혜정부 청와대 간의 유착 의혹을 조사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2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양 전 대법원장을 직접 조사하려 했으나 전직 비서실장을 통해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며 “조사단에 강제소환 권한이 없어 조사를 더 진행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협조를 요청하면 의혹 관련 문건 등 자료 제공에 응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합리적 범위 내에서 제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이날 출근길에 취재진한테 “(형사고발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내달 11일로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징계 요구 여부가 다뤄질 전망이다. 대표회의 현안에 밝은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일부 판사를 중심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징계를 요구하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회의는 조사단이 조사한 문건의 원본도 공개하라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가 시민단체 고발을 받아 양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의혹을 수사 중이다. 그동안은 대법원 자체 조사결과를 기다리며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정식 고발이 이뤄지거나 전국 법관들이 대표회의 등을 통해 수사를 요구할 경우 검찰 수사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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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회의를 마친 후 퇴근길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
그러나 정황만 갖고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겠느냐는 회의적 견해가 만만치 않다. 실제 조사단도 지난 25일 “특정 판사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이나 재판에 대한 간섭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며 “형사상 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3차례에 걸친 법원 자체 조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상 불이익을 가한 증거는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는데 또 검찰에 ‘시비를 가려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모양새가 우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 다른 재경지법의 판사는 “형사조치보다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 다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일부 법관은 “학술단체 와해 정황은 법원행정처가 모임 탈퇴를 종용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어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사법부가 위법행위를 하고 자기들이 덮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이미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조치가 된 만큼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의 ‘운명’은 검찰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이 2015년 8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독대할 때 상고법원 법관 임명에 관한 대통령 권한을 다룬 문건을 들고 간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단 관계자는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상고법원 법관 구성에 관여할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 양 전 대법원장이 그에 관한 간단한 문건을 가져간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에 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청와대와 ‘거래’하려 했다면 매우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염유섭·장혜진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