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워주고 먹여주고 용돈까지 주더라” 백가흠이 전한 무산의 선행

[이슈톡톡] 좌절하는 신인 작가 붙잡아준 무산 스님의 숨겨진 이야기 ‘소설을 그만 써야하나, 그냥 쾍 죽어야 하나.’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몇 년 동안 원고 청탁은 거의 없었다. 아무도 신인 소설가 백가흠을 주목하지 않았다.

백가흠은 그래서 수많은 날을 술로 지새야 했다. 자신의 표현으로는 “허구헌 날 술병이나 허리춤에 차고 방구석에 앉아있었다”고 했다.

그때 2003년 어느 날. 한 스님이 강원도 백담사로 자신을 불러선 좋은 절방을 내주고 먹여줬다. 소설가는 6개월간 그곳에서 새 희망을 일구기 시작했다. 스님은 바로 조계종 신흥사의 조실 무산 스님이었다.

소설 ‘귀뚜라미가 운다’로 알려진 소설가 백가흠씨는 31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와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난 26일 입적한 무산(86) 스님에게 받은, 숨겨진 스님의 선행을 소개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눴던 무산 스님의 선행의 숨겨진 선행 하나가 또다시 알려진 셈이다.

30일 오후 강원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에서 무산 스님의 다비식(시신을 불에 태워 유골을 거두는 불교의 장례의식)이 봉행되고 있다. 무산 스님은 지난 26일 신흥사에서 세수 87세, 승납 60세로 입적했다.
사진=연합뉴스
백씨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큰스님 열반에 들었다”고 무산 스님의 입적 소식을 알리며 힘들었던 데뷔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데뷔하고 몇 년 청탁도 없고 아무에게 주목도 없어 소설을 그만 써야하나 그냥 쾍 죽어야 하나 허구헌 날 술병이나 허리춤에 차고 방구석에 앉아있을 때 (무산) 스님, 백담사로 날 불러 반년이나 좋은 절방 내어주고 먹여주었다”고 떠올렸다.

백씨는 “가끔 도량에서 마주칠 때면 손으로 날 불러 '니 돈 없지?' 부끄러워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는 날 붙잡아 몰래 용돈도 주셨었다”며 소박한 삶 속 후배작가를 아끼는 무산 스님의 마음을 글로 기억했다.

백 작가는 “이미 살아서 부처였으니 다음 생엔 스님 원하던대로 해질녘 선선한 바람이나 되어 술향기 그득한 곳 머물다 흘러흘러 이 마을 저 마을 기분좋게 떠돌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마주칠 날 기다리겠다”고 스님을 추모했다.

한편 30일 강원도 속초 신흥사에서는 무산 스님의 영결식이 열렸다. 법구는 인근 금강산 건봉사로 이동해 불교장례인 다비식이 치러졌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