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5-31 11:26:18
기사수정 2018-05-31 11:44:46
[이슈톡톡] 좌절하는 신인 작가 붙잡아준 무산 스님의 숨겨진 이야기
‘소설을 그만 써야하나, 그냥 쾍 죽어야 하나.’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몇 년 동안 원고 청탁은 거의 없었다. 아무도 신인 소설가 백가흠을 주목하지 않았다.
백가흠은 그래서 수많은 날을 술로 지새야 했다. 자신의 표현으로는 “허구헌 날 술병이나 허리춤에 차고 방구석에 앉아있었다”고 했다.
그때 2003년 어느 날. 한 스님이 강원도 백담사로 자신을 불러선 좋은 절방을 내주고 먹여줬다. 소설가는 6개월간 그곳에서 새 희망을 일구기 시작했다. 스님은 바로 조계종 신흥사의 조실 무산 스님이었다.
소설 ‘귀뚜라미가 운다’로 알려진 소설가 백가흠씨는 31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와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난 26일 입적한 무산(86) 스님에게 받은, 숨겨진 스님의 선행을 소개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눴던 무산 스님의 선행의 숨겨진 선행 하나가 또다시 알려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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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강원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에서 무산 스님의 다비식(시신을 불에 태워 유골을 거두는 불교의 장례의식)이 봉행되고 있다. 무산 스님은 지난 26일 신흥사에서 세수 87세, 승납 60세로 입적했다. 사진=연합뉴스 |
백씨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큰스님 열반에 들었다”고 무산 스님의 입적 소식을 알리며 힘들었던 데뷔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데뷔하고 몇 년 청탁도 없고 아무에게 주목도 없어 소설을 그만 써야하나 그냥 쾍 죽어야 하나 허구헌 날 술병이나 허리춤에 차고 방구석에 앉아있을 때 (무산) 스님, 백담사로 날 불러 반년이나 좋은 절방 내어주고 먹여주었다”고 떠올렸다.
백씨는 “가끔 도량에서 마주칠 때면 손으로 날 불러 '니 돈 없지?' 부끄러워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는 날 붙잡아 몰래 용돈도 주셨었다”며 소박한 삶 속 후배작가를 아끼는 무산 스님의 마음을 글로 기억했다.
백 작가는 “이미 살아서 부처였으니 다음 생엔 스님 원하던대로 해질녘 선선한 바람이나 되어 술향기 그득한 곳 머물다 흘러흘러 이 마을 저 마을 기분좋게 떠돌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마주칠 날 기다리겠다”고 스님을 추모했다.
한편 30일 강원도 속초 신흥사에서는 무산 스님의 영결식이 열렸다. 법구는 인근 금강산 건봉사로 이동해 불교장례인 다비식이 치러졌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