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하루앞으로…기록으로 보는 역사적 의미

6·12 북·미정상회담은 역사적인 의미가 남다르다. 그큼 많은 기록을 남겼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기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 현지 매체들도 이번 회담이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입을 모으는 분위기다. 10일 현지 매체 ‘선데이 타임스’는 1면 톱 기사의 첫 문장에 ‘화요일의 역사적 만남(Tuesday‘s historic meeting)’이라고 썼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기록으로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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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담은 사상 첫 북·미 양측 정상이 만나는 회담이다.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은 사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열릴 뻔 했지만, 직전에 무산됐다. 2000년 10월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조율을 위해 올브라이트 미국 당시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지만 거기까지였다. 클린턴 행정부 임기 말 추진동력이 저하되고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했던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부시 후보는 클린턴 대통령을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라고 일갈했다.

한반도에서 … 북·미 정상회담의 미국 협상팀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왼쪽부터),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난 5월 29일 차량에 탑승한 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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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의 핵심인 비핵화와 체제보장 의제에 대한 실무자들 간의 실무조율이 비무장지대(DMZ) 한가운데에서 6차례에 걸쳐 비공개로 진행됐다. 긴장과 대립의 한복판인 판문점에서 실무협상이 6번 열렸다는 점은 지난 수십년 북·미간 실무접촉의 역사에서 주로 미국 뉴욕이나 베를린 등 뉴욕,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같은 제3국에서 세상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이뤄졌다는 점과 비교해도 눈길을 끈다. 정사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양측 실무진의 다급함이 엿보이는 동시에 협상 타결에 대한 양 정상의 의지, 실질적으로 협상이 진전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높인 측면도 있었다. 성김 필리핀 주재미국대사가 이끄는 미국 측 협상팀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북측 협상팀의 판문점 접촉은 6차까지 언론에 포착됐다. 언론은 이들의 비공개 접촉을 확인하기 위해 5월 27일 1차 접촉때부터 성 김 대사가 한국을 빠져나간 6월 7일까지, 판문점으로 향하는 길목인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와 미국 협상팀 숙소였던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진을 쳤다.

‘6’이라는 숫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 횟수이기도 하다. 북한은 6차례 핵실험 끝에 대화의 장에 나왔다. 북한은 6차 핵실험 후 핵무력 완성을 공식 선언했다는 점, 핵문제와 관련 과거 파키스탄 등 선행 사례에서 6차례 핵실험을 하고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받았다는 점 등에서 ‘6’이라는 숫자는 ‘매직넘버’로도 불린다. 다만 핵보유국 인정 매직넘버를 달성한 북한이 핵포기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매직넘버의 의미에 새로운 ‘참고(cf.)’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앞에서 국군의장대 사열을 마친 후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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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간 대화가 끊기고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며 한반도에 몰아쳤던 긴장고조와 갈등의 시간을 “잃어버린 11년”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4·27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대좌한 뒤 모두발언에서 “정말 수시로 만나서 문제를 풀어나가고 마음을 합치고 의지를 모아 갖고나가면 우리가 잃어버린 11년이 아깝지 않게, 우리가 좋게 나가지 않겠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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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북·미정상회담은 단순한 대화를 넘어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놓고 갈등을 계속해온 북핵협상사(史) 25년의 종지부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북·미 양측은 1993년 6월 11일 뉴욕에서 ‘북미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과 로버트 갈루치 국무성 차관보가 대좌했다. 양측은 성명에서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무력으로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한다. 한반도 비핵화,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며 상대방의 자주권을 상호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3대 원칙을 명시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12일 전날이 바로 1993년 북·미공동성명이 발표된지 정확히 25년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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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담은 4·27 남북정상회담일로부터 47일만에 열린다. 남북이 판문점선언을 발표한지 불과 47일만에 진행되는 북·미정상회담은 문재인정부와 트럼프행정부 초기에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빠르게 추진하려는 한·미간 공통된 의지를 보여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임기 초 빠른 진전을 추구하는 이유는 2000년 무산된 클린턴-김정일 간 회담 무산의 교훈이 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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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담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지 70년 만에 평화구축을 목표로 한 적대국 정상간 대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종전선언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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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자는 정부의 구상은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향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성패에 따라 앞서 2월9일 열렸던 평창동계올림이 역대 올림픽 개최 역사에서 스포츠를 통해 평화 계기를 만든 획기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우리정부, 나아가 한·중·일 정부는 지난 5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중정상회의에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 베이징하계올림픽을 릴레이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자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이번 회담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일로부터 124일 만에 열리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1일 조선중앙TV를 통해 한반도 신국면 조성의 신호탄이 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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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한반도 정세 변화의 직접적이고 가장 명시적인 계기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및 대화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김정은 신년사 163일째 되는날 열린다. 불과 6개월여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7월 6일 옛 베를린 시청 베어홀에서 열린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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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비핵화 구상을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밝힌 건 2017년 7월 6일 베를린 구상 발표때였다. 당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함께 우리정부도 대북제재와 압박에 한창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대북압박과 제재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제재는 어디까지나 대화를 위한 수단일 뿐, 궁극적인 지향은 대화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당시 제재국면에서 대화를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현실성 측면에서 크게 평가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남·북·미는 베를린구상 발표 342일 만에 열리는 세기의 비핵화 담판 단계까지 달려왔다.

싱가포르=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