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06-14 08:29:13
기사수정 2018-06-14 08:29:12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했으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두 정상이 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모호한 선언만 담겨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미국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빈손 회담’, ‘트럼프 외교 참사’ 등 혹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비핀 나랑 MIT 교수 등이 기고한 칼럼을 통해 “북한은 핵보유국이다. 이제 익숙해지자”고 북핵 수용론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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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위해 만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김 위원장에게 안겨주었다.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완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언론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빈약한 북·미 정상회담 결과는 미국의 세계 지도국가 시대에 종언을 고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AP 통신은 13일(현지시간) “트럼프-김 회담으로 한국의 역할에 새로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서 중재자를 자임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문 대통령, 칭찬과 비판 직면
AP는 “한국 대통령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하려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셔틀 외교를 했을 때 그가 평화 정착의 중재자인지 아니면 미국 주도의 대북 경제 제재 체제를 약화하려는 북한의 조력자인지를 놓고 칭찬과 비판에 동시에 직면했었다”고 지적했다. 이 통신은 “이제 문 대통령이 중재한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역할이 긍정적이었는지, 아니면 부정적이었는지 보다 분명하게 물을 수 있게 됐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AP 통신은 이 질문에 대한 즉각적인 대답은 “아마도 아니다”(Probably not)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아마도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통 큰’ 양보를 한 데 대해 한국과 미국에서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 외교에 대한 평가는 좀 더 엇갈리고, 어려워졌다고 이 통신이 강조했다. 일부 인사들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현재의 데탕트 무드를 성공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기도 한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발표한 성명을 통해 “6월 12일 센토사 합의는 지구 상의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호평했다. 문 대통령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한 메시지에서 “역사적인 북·미 회담의 성공을 뜨거운 마음으로 축하하며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5월 26일 통일각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다시 만났을 때, 그리고 바로 어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하면서 조심스레 회담의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70년에 이르는 분단과 적대의 시간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실조차 믿기 어렵게 하는 짙은 그림자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낡고 익숙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하게 새로운 변화를 선택해 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두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에 높은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의 비판
한국의 보수 진영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혹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핵 야욕을 꺾는 데 실패했다는 게 보수 진영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AP는 “그들 (보수 진영 인사)은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조치와 시한을 구체적으로 못 박지 못했고, 이로써 북한이 핵 프로그램 완성을 위한 시간을 벌게 된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AP에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정상회담 초대를 덥석 물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그 대가로 본질적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멀리 왔기에 돌아설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노력했고, 북한이 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하지 않으면 북한에 중대한 양보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회담이 끝난 뒤 북한이 열망했던 한·미 군사 훈련 중단 방침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결정을 내리면서 한국 측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