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 빛과 그림자] ‘워라밸’ 실현, 고용 유연성이 답이다

고용률 70% 선진국은 어땠나 / 노동시간 줄여 신규 고용 확보 / 독일·네덜란드 등선 노동 세분화 / 다양한 형태 일자리 적극 창출 / 정부도 세제개혁·규제완화 지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달성하고, 일자리도 늘리는 ‘두 마리 토끼 잡기’는 녹록지 않은 일이다. 우리보다 앞서 ‘저녁이 있는 삶’을 택한 서구 선진국들도 대체로 가시밭길을 걸었다. 특히 네덜란드와 독일은 모범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네덜란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률 70%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 역시 70%의 고용률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노동 시간 단축의 효과를 봤다. 여기에는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고용유연성을 확보하고,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도입한 것이 주효했다. 전문가들은 네덜란드와 독일처럼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고 노동을 세분화해 다양한 근로 형태를 도입해야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25일 재계 등에 따르면 1970년 이후 고용률 70%를 밑돌다 이를 넘어선 경험이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미국과 영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등 11개다. 이 중 네덜란드와 독일은 고용률 70%를 달성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줄었다.

네덜란드는 1994년 63.9%였던 고용률이 1999년 70.8%로 높아지는 과정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법으로 강제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주당 40시간이던 노동시간을 38시간으로 줄였고, 이 자리를 30시간 미만 노동자를 신규 고용하는 방식으로 채웠다.

이 덕분에 네덜란드 생산가능인구는 19만명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취업자는 86만명이나 증가했고, 실업자는 21만명(43.1%) 줄었다. 네덜란드는 노사정이 모여 한목소리를 냈다. 노측은 임금인상 자제와 노동자 사회보장부담 확대를 추진했고 사측은 근로시간 단축과 30시간 미만 고용을 늘리는 방안을 내놨다. 정부는 재정지출을 줄이고 법인세와 소득세 부담을 덜어줬다. 

독일도 평균 노동시간이 줄면서 고용률도 함께 늘어난 ‘행운’을 거머쥔 국가다. 2003년 64.6%였던 독일의 고용률이 2008년 70.2%로 늘어나면서 임금 노동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348시간(주당 25.9시간)에서 1339시간(주당 25.7시간)으로 0.6%가량 줄었다. 이 시기 독일에서는 ‘어젠다 2010’이 발표됐다. 이 사업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총리가 2003년 연방하원에서 발표한 것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사회보장제도 개혁, 세율 인하 및 세제개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르츠 개혁 등에 따라 해고 규제와 기간제 및 파견 등 비정규직 규제를 완화했다.

또 ‘미니잡(월 소득 400유로 미만인 2개월 미만의 단기 고용)’이나 ‘미디잡(월 소득 400∼800유로의 일자리)’ 등 저임금 일자리 지원을 확대했다. 하르츠 개혁은 실업률을 줄이고 임시직 고용 규제를 푼 제도다.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다양한 근로 형태가 확산되면 근로시간은 자연스럽게 감축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법제도 중심으로 다가가기보다 노동시간 유연화와 생산성 향상 등 시장 기능에 중점을 둔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다른 주요 선진국들은 고용률 상승과 함께 노동시간이 덩달아 늘어나는 고통을 겪었다.

영국은 1984년 65.9%였던 고용률을 1989년 72.0%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임금 노동자의 평균 근무 시간이 1664시간에서 1715시간으로 3.1%(51시간) 많아졌다.

미국 역시 1982년 65.8%였던 고용률이 1987년 70.7%로 늘어나면서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이 1808시간에서 1831시간으로 23시간(1.3%) 길어졌다. 1996년 고용률 70.6%를 달성한 뉴질랜드의 경우 노동 시간이 1991년 1722시간에서 1996년 1764시간으로 42시간(2.4%) 증가했고, 캐나다 노동자들도 70%의 고용률을 이루는 과정에서 31시간 더 일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간 단축이 안착하려면 노동의 정의를 세분화하고 여기에 맞는 다양한 근로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의 중요성을 외치는 계층 중 사회적인 약자도 있지만 능력을 잃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만년 부장도 많다”며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노동을 보호할 필요는 없는 만큼 일자리에 대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소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근로시간 단축은 개인복지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라며 “이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임금인상이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는 데 시차가 있는 만큼 장기적인 효과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