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도심 개발, 상가임대료↑…거리로 내쫓기는 원주민들

최근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한 족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가 건물주 이모씨를 찾아가 둔기를 휘두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씨는 큰 상처를 입었고, 김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임대료였습니다. 서촌은 김씨가 20년 넘게 장사를 해왔던 오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2009년에 차린 이 족발집은 맛집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 건물주가 바뀌면서 세입자인 김씨에게 먹구름이 드리웠습니다. 이씨는 월세를 전보다 4배가 넘는 120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김씨의 항의에도 이씨는 '싫으면 나가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법에 기댈 수 없었던 김씨는 끝내 둔기를 집어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최초 임대차 계약으로부터 5년까지만 이러한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족발집을 차린 지 이미 7년이 넘은 상태여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임대료 분쟁은 낙후됐던 구도심이 활성화하면서 주거비용이나 상가 임대료가 급등해 원주민 등 상인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건물 임차인의 각종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23건이나 발의됐으나,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계류중입니다. 대부분의 개정안은 임대차보호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임대료와 보증금을 인상할 경우 10%를 넘지 못하도록 하자는 안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족발집 사건 이후 일부 국회의원들이 시민단체와 함께 임대차보호법 개정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창업·폐업이 악순환하고 있는 형국이라 실효성 있는 임차상인 보호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30년 넘게 영업해온 도소매 점포나 음식점이 100년을 이어갈 지역 명소로 육성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대를 이어가며 100년의 전통을 자랑할 소상공인을 키울 '백년가게 육성방안'을 지난 18일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성장잠재력 있는 소상공인을 발굴해 100년 이상 존속·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성공모델을 확산해 지속가능한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중이 과도하게 높고, 이에 따른 출혈경쟁 및 창업과 폐업이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종사자의 고령화 및 청년인력 유입 감소 등으로 소상공인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100년 이상 존속하는 기업이 90여 개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2만2000여 개다.

이에 정부는 30년 이상 도소매·음식업을 영위하는 소상인(일부 소기업) 중 전문성, 제품·서비스, 마케팅 차별성 등 일정 수준의 혁신성을 가진 기업을 발굴해 '백년가게'로 육성한다.

올해 목표는 100여 개로, 향후 타 업종으로 확대하고 규모도 늘릴 예정이다. 백년가게 선정을 위한 예산은 5억원이고, 기존 특례보증 자금이나 소상공인정책자금 등을 활용한다.

선정될 시 백년가게 인증현판을 제공해 신뢰도 및 인지도를 제고하고, 식신 등 유명 'O2O(온라인 투 오프라인)' 플랫폼과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과 협업해 홍보한다.

◆100년 이상 존속기업, 韓 90여개 vs 日 2만2000여개

보증비율(100%), 보증료율(0.8% 고정) 등을 우대하는 특례보증을 신설하고, 소상공인정책자금(경영안정자금) 금리도 0.2%포인트 인하한다.

프랜차이즈화, 협동조합화 등 체인화와 협업화를 지원하고, 컨설팅 지원단을 운영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중기부는 성공모델을 확산하기 위해 지역별·업종별 네트워크를 구축해 경영 노하우를 공유하고 사례집도 발간한다.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가업승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교육하는 한편 청년상인 희망자, 청년몰 입점 예정자를 유사 아이템의 백년가게와 연결해 경영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게 함으로서 청년인력의 안정적인 유입을 지원할 예정이다.

안정적인 임차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법무부와 협업해 상가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건물주가 재건축·철거 등 사유로 임대차계약 연장을 거절할 시 영업시설 이전 비용을 보상해주는 '퇴거보상제'를 마련한다.

백년가게 확인서 유효기간은 3년으로 유효기간이 다가오면 경영성과, 재무상태 등 혁신 노력과 성과를 평가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서울 도심 핵심상권 임차인 보호 부족

앞서 지난 1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이 개정돼 식당을 운영하는 임차인에 대한 보호가 두터워졌지만, 정작 강남과 마포 등 서울 시내 '알짜' 상권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외식업중앙회가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시내 일부 자치구에서는 평균 매물 가격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인 '환산보증금 기준액'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산보증금이란 상가나 건물을 임차할 때 임대인에게 내는 월세를 보증금으로 환산한 액수에 보증금을 더한 금액이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이 환산보증금 액수를 기준으로 법 적용 대상 여부를 정하고 있어 임차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시행령을 고쳐 환상보증금 기준액을 지역에 따라 50% 이상 대폭 올린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기준액은 △서울 6억1000만원 △부산·인천 등 5억원 △세종·안산·용인 등 3억9000만원 △그 밖의 지역 2억7000만원이다.

보고서는 "지난해 기준 국내 외식업체의 82.5%는 사업장을 임차해 매장을 운영하는 상황"이라며 "그만큼 상가임대차 계약 당사자인 임대인과 임차인의 분쟁도 빈번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외식업체 22.9%가 몰린 서울에서는 관련 분쟁을 처리하는 '서울시 상가임대차 상담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가 1만1000건이 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문제는 시행령 개정으로 환산보증금 기준액이 6억원 이상으로 대폭 올라갔지만, 지난 몇 년간 서울 도심 땅값이 폭등 수준으로 치솟다보니 여전히 보호의 테두리 밖에 놓인 곳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상가 임차 매물 2000개를 집계해 환산보증금을 산출한 결과, 평균 액수는 △강남구 9억700만원 △송파구 6억8000만원 △마포구 6억1200만원 등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에서도 강남역, 잠실역, 잠실새내역, 홍대입구역, 상수역 등 핵심 상권을 보유한 곳이다. 이들 자치구 평균 매물 가격이 환산보증금 기준액을 훌쩍 넘긴다는 것은 여전히 임차인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업주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서울 시내 매물 전체의 환산보증금 평균 액수는 3억4000만원으로, 얼핏 보면 시내 전체가 임차인 보호 제도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따져보면 법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해 지역 간 차별 논란도 불거질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남구는 지역 내 음식점 절반 가량이 환산보증금 기준액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환산보증금 기준액을 넘어서는 상가 임차인은 '5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계약 갱신을 요구할 권리', '임대료 인상률 상한 제한', '우선변제권' 같은 권리 가운데 일부만 인정받을 수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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