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혁신회의 취소… '경고장' 날린 文대통령

‘규제와의 전쟁’은 역대 정권 최대 난제다. 이명박정부때는 ‘규제 전봇대 뽑기’, 박근혜정부 때는 ‘손톱 밑 가시뽑기’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모든 규제를 일단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야 하는 규제만 살려야 한다(박근혜 전 대통령)”고까지 규제 철폐를 강조했으나 성과는 시원치 않았다. ‘규제축소=권한축소’여서 각 부처가 내심 소극적인데다 기업 환경 개선만을 위해 무작정 규제를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규제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규제 철폐 논의가 갈등의 시작이 되는 경우도 태반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경제성장 전략의 세 바퀴 중 하나인 혁신성장을 위한 토대로 규제혁신을 꼽아 왔다. 올해 국정목표인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 변화’를 위해선 ‘낡은 규제·관행 혁파→혁신성장 촉진→미래 먹거리 발굴·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이뤄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 인식이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주재한 1차 규제혁신규제 혁신 토론회에서 “근거 규정이 있어야만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재검토해주기 바란다”며 현행 규제 체계를 ‘포괄적 네거티브’(우선허용-사후규제) 규제 방식으로 과감하게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38건의 규제 개선과제, 규제 샌드박스 도입, 혁신성장 선도사업 규제혁신 추진방안 등에 관한 보고를 받고 “보고대로만 되기만 해도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가 된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이날 “갑갑하다”며 2차 규제혁신회의 주재를 연기한 것은 자신의 기대치, 또는 ‘국민이 체감할 만한 변화’를 이끌어내기에 크게 부족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이날은 1년여간 같이 호흡을 맞춰온 청와대 참모진 중 수석 3명이 개혁에 속도를 올리기 위해 청와대를 떠나는 날이었으니 미진한 개혁 속도에 대한 문 대통령 심경이 좋았을 리 없다. 이날 짐을 싼 반장식 일자리수석도 오전 마지막 현안점검회의에서 “지난 10년 간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그러나 말만 많았지 착수를 하지는 못했다. 이번 정부에서야 착수했다”면서도 “하지만 국민들의 삶이 달라지는 걸 체감하는 게 중요한데 그 짐을 남겨두고 가게 돼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문 대통령도 이날 규제혁신 보완을 지시하며 “속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규제혁신은 (기득권)보호에 불과하다”고 속도를 강조했다. 또 “이해당사자들이 있어서 갈등 풀기 어려운 혁신규제 과제도 이해당사자를 열번, 스무번 찾아가서라도 규제를 풀어야한다. 규제혁신을 가로막는 이슈들을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당부했다. 신개념 서비스·산업으로 공유경제가 주목받고 있는데 차량공유 서비스 대표적 주자인 글로벌업체 우버와 토종벤처 풀러스 등이 기존 운수업계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등을 지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가는 혁신규제회의 전격 취소를 규제 혁신 낙제 부처에 대한 ‘경고장’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청와대 경제·일자리 수석이 교체되는 상황에서 경제 관련 부처에 긴장감을 주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불과 반나절을 앞두고 연기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상황이어서 이번 사태를 개각과 연결짓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경제 부처 한 관계자는 “청와대 수석들도 교체되는 마당에 어중간한 규제혁신대책으로 면피하려다 경고를 받은 게 아닌가 싶다”며 “언론에서 개각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어서 관련 부처는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초로 예정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일정도 돌연 취소됐다. 당초 기재부는 다음달 2일 김 부총리와 경제 6단체장의 간담회를 준비했지만 일정 조율 문제로 연기한다고 이날 밝혔다. 간담회 참석 대상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무역협회,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등이다.

박성준·유태영 기자,세종=안용성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