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산사의 나라

우리나라의 절은 대부분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 깊은 곳에 있다. 산사(山寺)라는 말처럼 산과 절은 함께 있다. 산사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거리를 둔다. 산사에 이르는 길을 따라 마음을 씻어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가야 한다. 순례의 길이다. 산사에 들어선 뒤에도 일주문에서 시작해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여러 겹의 관문을 넘어야 부처님 앞에 이를 수 있다.

시인 이형권은 기행문집 ‘산사’에서 “산사는 세속의 번뇌를 씻어 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깨우침의 장소”라고 했다. “검푸른 산그늘에 휩싸여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저녁 산사의 적요 속에 있을 때나, 조각달이 처마 끝에 떨고 있는 첫새벽 스님의 도량석 염불을 듣고 있노라면, 산사는 일찍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우주의 숨결까지 깨닫게 해 준다.” 이산하는 ‘피었으므로, 진다’에서 영주 부석사를 “그리워할 대상이 없어도 그리움이 사무치는 절”이라고 했다. “석양빛이 고여 있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졸거나 꿈결처럼 들려오는 풍경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난 듯 적멸의 한때를 즐길 수 있다.”

산사는 살아있는 문화 유산이다. 불교를 배척한 조선시대 선비들도 산사의 정취를 즐기는 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조선 중기 문신 신광한은 ‘산사에 투숙하여’라는 시에서 “젊은 날엔 산집의 고요함이 좋아서/ 선창(禪窓)에서 옛 경전을 많이도 읽었었네”라고 노래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석사와 양산 통도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산사 7곳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7∼9세기 창건 이후 신앙·수행·생활 기능을 유지해온 종합승원이라는 점에서 세계유산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자연친화적인 환경도 높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앞으로 보존·관리를 잘하면 다른 산사들도 세계유산으로 확장 등재될 수 있다. 승려의 선(禪) 수행 전통 탓에 산사가 많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산사의 나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