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3건 이상해야 / 저녁 있는 삶 꿈도 못 꿔 / 당장 먹고사는 게 문제 / 배달 한 건에 목숨 건 사투 / 시간이 곧 돈 / ‘베테랑’ 운전자도 빗길에는 속수무책 / 조금이라도 늦으면 욕먹을 각오해야 / 대부분 ‘주먹구구 계약’ 사고 나면 속수무책 / 장마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빗물과 땀으로 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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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날씨에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힘겹게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 |
“우리 같은 사람은 사고를 달고 다녀야 밥이라도 먹고 살죠. 덥고 춥고 따지면 굶어 죽기 딱 입니다. 겨울엔 추위에 뼛속까지 시리고, 요즘엔 푹푹 찌는 열기 때문에 죽을 맛이죠. 장대비가 내리는 날에는 목숨을 내놨다고 봐야죠. (허허) 그래도 이일이라도 있으니 먹고 살아갑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늦었다고 욕하는 사람들…. 비 맞으면 돌아오는 길은 진짜 죽을 맛입니다. (허허)”
많은 비를 내렸던 태풍 쁘라삐룬이 지나가고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찾아왔다. 장마·태풍과 함께 푹푹 찌는 찜통더위가 시작됐다. 올해만 벌써 130명이 열사병, 탈진 등 온열 질환자가 늘면서 본격적인 ‘더위 전쟁’이 시작됐다. 장마·폭염이 연이어지며 오토바이 배달 종사자의 근심이 더욱 깊어진다. 찌는 듯한 더위에 조금만 달려도 온몸은 땀으로 푹 젖기 때문이다. 헬멧을 벗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로 범벅이 된다.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오환과 두통. 헬멧을 벗지 못하는 배달 노동자들에게는 두통이 일상이 됐다.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지만, 안전을 위해 헬멧을 벗지 못한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오토바이 베테랑 운전자도 빗길에는 속수무책. 빗길은 늘 긴장하면서 운전할 수밖에 없다. 순간 실수로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서울권에서 15년 넘게 배달 일을 한 최 모(55)씨는 “비가 오는 날에는 일 안 하고 싶죠. 사고 나는 장면도 많이 봐왔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불구가 됐다는 소리 들을 때마다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죠. 집사람과 딸만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합니다”고 했다.
장마철 폭염과 찌든 더위에도 한 번이라도 더 배달해야 수입으로 이어진다. 궂은 날씨로 배달시간이 늘어나면 하루 벌이는 그만큼 줄어든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만큼 사고도 증가한다. 18년 경력 민 모(58)씨는 “직장 다닐 때가 좋았죠. 이제는 5,000원 밥을 먹을지 아니면 6,000원 밥을 먹을지 고민합니다. 1,000원 차가 뿐인데, 밥 먹고 사는 게 쉽지 않네요”라고 했다.
욕심내서 빗길 과속운전은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빗길에서의 제동거리는 마른 노면보다 1.5배 이상 길어진다. 고속 주행 시 수막현상이 발생하면서 브레이크로 차량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끄러짐에 의한 사고는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조심해야 한다.
김 모(55)씨는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는 것 같네요. ‘다치면 안 돼 안 돼’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방어운전’을 하지만, 빗길에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그나마 나 같이 장거리 안 뛰는 사람은 다행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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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날씨에 한 자전거 운전자가 달걀을 가득 싣고 힘겹게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 |
◆ 시간은 곧 돈
“밥을 3분 만에 먹죠” 늘 긴장 탓에 밥을 챙겨 먹을 시간이 없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다. 배가 너무 고프면 한손에는 김밥 한 줄을 쥐고 배달한다. 든든한 국밥 먹는 것이 소원이 됐다. 웬만하면 밥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는 것이 좋다. 배달시간에 쫓겨 화장실을 자주 갈까 봐 겁이 난다는 것이다. 이일 저일 찾다가 배달 일하게 됐다는 김모(27·남)씨의 하소연이다. “처음에는 이일을 어떻게 하나라는 고민을 했죠. 당장 돈이 필요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찾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배고파도 일은 해야 하고, 습관처럼 밥을 거르게 됐다. 언젠가는 편한 밥을 먹을 때도 있겠죠”라고 푸념을 털어놓았다.
지난 2일 오후 비가 오락가락 오는 날씨 탓 배달 주문량이 평소보다 배 이상으로 늘었다. 세찬 장마가 지나가고 후덥지근한 날씨의 연속. 장마전선이 오락가락하는 탓에 습한 날이 연속이다. 배달 종사자는 습한 날씨가 더욱 고역이다.
김 씨는 말을 하면서도 방금 나온 음식을 포장하기에 바빴다. 김 씨가 입고 있는 우의에서 땀과 빗물이 섞여 냄새가 났다. 우의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했지만, 김 씨는 조금이라도 쉴 틈이 없었다. 늦어진다는 인식이 쌓이면 주문량이 줄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배송이 늦으면 손님에게서 불만 섞인 욕설을 듣기 때문이다.
빠른 배달 탓에 옷은 젖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 됐다. 젖은 몸을 말릴 틈도 없다. 배달 일을 해 본 사람들은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겨울철이면 빙판길, 여름철이면 빗길. ‘방어운전’을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사고는 대응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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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날씨에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짐을 싣고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 |
◆ 국내 배달 음식 시장 가파른 성장 속도…배달 종사자들의 여건은 열악
약 14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배달 음식 시장. 프랜차이즈 업계뿐만 아니라 대형마트도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배달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빠른 배송과 편리함 뒤에는 묵묵히 일하는 배달 종사자들 굵은 땀이 담겨 있다. 흘린 땀만큼 배달 종사자들의 여건은 열악하기 그지 없다.
고용노동부가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에 발주한 ‘배달 대행 배달원의 종사 실태 및 산재보험 적용 강화 방안 연구’ 보면 플랫폼 배달노동자 수는 5,000~1만 9,000명으로 추산되지만, 공식 통계는 없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많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힘든 실정이다. 업체와 배달 종사자는 주먹구구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불합리한 내용에 있다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게 쉽지 않은 구조로 정착됐다.
배달 중에 교통사고나 돌발상황 등 심각한 생기면 타격이 크다. 정부가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탓도 크다. 근로감독이 이뤄지더라도 적용할 근거가 미약해 정부의 개입도 쉽지 않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야 말할 것도 없고,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힘들다. 이렇다 보니 정책적으로 소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의 따르면 “플랫폼 노동의 종류가 다양한 형태 진화하고 확산되고 있다”며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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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날씨에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짐을 옮기고 있다. (왼쪽) 오토바이 운전자가 짐을 싣고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 (오른쪽) |
◆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져요"
“오토바이에서 그만 타야죠. 하루라도 빨리 내려오고 싶은 마음뿐인데, 현실은 녹록지 않네요” 비싼 학비에 방학 때만 되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 모(22·남)씨는 초인종을 누를 때 마다 긴장을 한다고 했다.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가끔 다짜고짜 폭언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다면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고객이 문을 열기도 전에 욕부터 할 때는 정말 힘들다고 했다. 술에 취해 돈을 던지시고 “야! 너 뭐하는 XX야 빨리 XX”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그땐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밀리는 주문량에 거듭 양해를 구해도 조금이라도 늦으면 욕설을 듣기 일쑤. 고개 숙여 거듭 사과를 한 끝에 음식 값을 받지만, 며칠 동안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장마철 최악의 아르바이트 1위는 ‘배달 아르바이트’라고 조사됐다. 한 취업사이트에서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아르바이트생 총 116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장마철 아르바이트’ 관련 설문조사를 결과를 5일 발표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꼽은 장마철 극한 알바 1위는 ‘오토바이 등 배달 아르바이트(49.1%)’로 조사됐다. 빗길 사고 위험이 높다는 게 가장 큰 이유. 설문조사를 처음 시작한 2013년부터 6년간 장마철 극한 알바 1위에 계속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장마철 아르바이트가 힘들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습기로 가득한 근무환경(52.2%·복수응답)’ 때문이다. 이어 각종 사고 위험(35.9%), 불편한 출퇴근길(34.1%), 냄새·물기와의 싸움 때문에(17.6%), 괜히 기분이 처지고 힘들어서(13.6%) 등의 답변순이었다.
배달 종사자들의 대부분이 듣고 싶은 말은 거창하지 않았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전부. 이태원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56·남)씨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해서 아들을 배달을 시키고 있지만, 고개 숙여 가게 문을 여는 아들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아프다”며 “주문하시는 고객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그분들도 내 아들딸들이 힘든 환경에서 일한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고 했다.
요즘 같은 장마철. 쏟아지는 장대비를 비를 뚫고 늦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수고가 많다는 고객의 말 한마디에 그나마 힘이 난다고 했다. 대부분 배달 종사자는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세요, 물 한잔이라도 드시고 가세요’라는 고객의 말 한마디에 피로가 풀린다고 했다.
박 씨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항상 위험에 노출 돼 있다. 가게를 나서는 아들을 볼 때 마다 ‘조심해서 타!’ 라는 말뿐이다” 라며 “늦고 싶어서 늦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객이 알아줬으면 한다. 조금 늦더라도 이해해주시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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